12월 19일/ 거짓 평화를 부수시는 주님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by 글탐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포기하기를 거절하는 비밀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잘못한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경우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복음을 대항하고 싫어하는 뿌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지만 그들의 뿌리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복음에 대해 견디지 못합니다.

당신의 메시지가 쓸모가 있으려면 그전에 그들이 복음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다고 착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하고 양심적으로 사는데 왜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이들이 누리는 행복과 평화는 잘못된 것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거짓 평화를 부수기 위해 검을 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직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신앙 초창기 시절, 나는 마태복음 10장 34절에 기록돼 있는 말씀이 잘 이해가 안 됐다.

화목제로 오신 예수님이라고 하셨는데 왜 여기서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라고 말씀하셨을까? 심지어 아버지와 딸이,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고,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까지 말씀하신다. (마 10:35~36) 자칫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참으로 오해할 만한 말씀이요, 이해가 안 가는 말씀이다.

이와 똑같은 말씀이 누가복음에도 기록돼 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 (눅 12:49~51)


누가복음에서는 검 대신 분쟁이란 말을 쓰고 있다.

결국 검과 분쟁은 싸움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아주 명확하게 밝히신다.

불은 심판을 말씀하신 것이다.

불의 심판, 이것이 마지막 때의 심판이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2~13)


불의 심판은 모든 형질이 녹아 없어지는 심판이다.

그리고 죄와 죄악 된 세상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한다.

결국, 주님께서는 그 심판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것이 바로 세례인데, 세례는 깨끗하게 씻김 받는 의식으로 모든 죄악이 씻어진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 세례가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십자가에서 이루어지는 심판, 이것은 모든 죄악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고 세례의식이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맡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을 것 같으리라.' (고전 3:14~15)


죄는 불로 심판받고, 죄인인 우리는 구원받는다는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검을 주시고, 분쟁하게 하신다는 것은 말씀의 검을 우리에게 주어 죄의 근원과 싸워서 승리케 하시겠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원수라고 표현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의 근원과 싸우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혈과 육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딸과 며느리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죄성과 싸우라는 것이다. 그 죄와 우리가 함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었다.

이것은 죄와 죄인의 완벽한 구분 없이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말씀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도 비슷한 맥락이지만 또 전혀 다른 말씀이다.

여기서 원수는 죄를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죄인인 그 영혼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는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던 것처럼

죄인인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주님께로 인도하라는 것이다.


같은 '원수'라는 표현을 썼지만

앞에서 표현된 '가족이 원수다'라고 표현한 원수는 죄의 근원인 사단이고,

또 같은 '원수'라는 표현을 썼지만

뒤에서 표현된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표현된 원수는 죄인인 인간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 구분될 때 비로소,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36절의 말씀이 이해된다.

그리고 이것이 구분될 때 우리는 비로소 싸워야 할 대상을 분별할 수 있다.

그리고 거짓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발견하는 보물지도와 같다.

보물지도에 감추어진 비밀의 키워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풀 수 있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성경의 신비를 체험하고, 하늘의 보화를 캐는 작업이 계속되길 기도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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