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나의 희생제물은 살아 있습니까?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by 글탐가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창 22:9)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훈련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진행됩니다. 주님은 어느 곳에서도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포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가치 있는 단 한 가지 곧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위해 당신의 삶을 주께 드리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산 제사'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고 거룩하게 된 당신의 모든 능력을 하나님께서 사용하게 하십시오. 이러한 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산 제사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마지막으로 발행한 책 이름이 '동행'이었다.

박희준 권사님이 쓰신 신앙에세이였는데,

이 책을 끝으로 나는 출판사 문을 닫게 됐다.


참으로 씁쓸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침잠된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책꽂이에 꽂아 있는 '동행'이란 책이 보였다.


'너와 나의 동행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란다.'


마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거 같았다.


오늘 묵상글을 읽는데 문득 눈에 확 들어오는 글귀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단 한 가지, 곧 주님과 함께하는 삶!'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포기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진정 새로운 시작의 알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와 이토록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걸까?

왜 우리의 삶을 전 인격으로 원하며, 산 제사로 드리기를 원하시는 걸까?


정말 단순한 답을 찾아봤다.

사랑은 일방적이지 않다.

서로 사랑할 때,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확증시켜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전인격으로 살아있는 산 제사로 희생제물로 내어놓으셨다.

그것은 다른 무엇으로 표현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이자 최고의 가치다.


최고의 사랑, 최고의 가치를 내어주셨으니까,

나도 줬으니 너도 줘라 하는 식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그 사랑에 갈급함을 느끼신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여자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짝사랑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남자는 그 여자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얼마나 원할까?

상상하기 쉽지 않은가?


'내가 너를 사랑했으니, 너도 날 사랑해야 돼!'

하며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진짜 사랑은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기를 기다려주는 것,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갈망하신다.

그것은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한 변치 않는 그 사랑에서 시작된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짝사랑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아프지만, 또 포기되지 않는 사랑이다.


비록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아주 작고 연약하고 부족한 사랑이지만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

그 사랑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본격적인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동행,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그 발자취는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이 된다.


오늘도 우리의 삶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가득 채워지고

흔적이 되기를 기도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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