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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겸손과 온유로 섬깁니까?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by 글탐가
주님 누구시니이까 (행 26:15)
우리는 예수님의 영이 아닌 다른 영으로 주를 섬기려고 합니다. 주님을 돕겠다고 나서지만 주님께 상처를 드립니다. 심지어 주님의 요청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면서 악한 영을 가지고 밀고 나갑니다. 또한 우리의 입술은 옮은 말을 하는데, 마음은 미움의 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열성이 있지만 내 방식대로 주님을 섬기겠다는 고집 때문에 예수님을 핍박해온 것은 아닙니까? 내 의무를 마쳤다고 느끼지만 그 의무를 수행하면서 주님께 상처를 드린 적은 없습니까? 진정 주께서 맡기신 의무라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수고할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가끔씩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벽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가끔씩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정말 같은 분이신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목사님과 교제를 나누는 중에 그 의문에 대해 시원한 해결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코끼리 발을 보고, 코끼리를 설명하죠.

그 사람에게는 코끼리의 발 모양이 코끼리의 전부인 거죠.

그리고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귀를 보고, 코끼리를 설명해요.

그 사람에게는 코끼리 귀 모양이 코끼리의 전부예요.

또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코를 보고, 코끼리를 설명해요.

그 사람에게는 코끼리 코 모양이 코끼리의 전부인 거죠.

세 사람이 같은 코끼리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전혀 다른 코끼리 모양이 되는 거죠.

결국, 자신이 본 코끼리가 맞다며 큰소리로 싸워요.

그렇다면 세 사람 말이 틀린 건가요?

다 맞죠. 세 사람은 어찌 됐든 코끼리의 일부지만 코끼리를 본 것이 맞으니까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크고 높으신 하나님이 계신데 우리는 각자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얘기해요.

그리고 그걸 하나님을 전부 안다고 착각하는 거죠.

그 착각이 바로 오만을 불러요.

그러기에 자신의 답은 맞고, 상대방의 답은 틀리다고 말하죠.

하나님은 너무 크고 놀라우신 분이라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주님 앞에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거죠.

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죄이죠.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안다는 것 자체가 교만 예요.

그런데 코끼리 발도 보고, 귀도 보고, 코도 본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세 사람과 대화 나눌 때, 아~ 하며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죠.

'저 사람이 코끼리 발에 대해 설명하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에요.

그것이 바로 성숙한 크리스천의 모습 예요. "


그래서 아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수 있고, 공감이 가능한 거구나!

그래서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거구나!

예수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갈망이 점점 커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으로 이 땅 가운데 낮은 자로 임하신 주님!

겸손과 온유함은 함께 가는 단어인 거 같다.

겸손하면 온유함으로 나타난다.

나를 낮추는 것, 비굴해지는 것이 아니라 온유해지는 것이다.

온유는 내면에서 통제가 된 후 나오는 부드러운 성품이다.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겸손의 왕으로 오셨다.

왕이신 그분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며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예수님의 겸손이 우리 삶에 드러나길 원한다.

예수님의 겸손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섬김의 도전으로 실행되길 원한다.


오늘도 주님 알기를 더 간절하게 사모하며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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