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월 5일/ 낮아지고 닳아질 수 있습니까?

# 마음을 어렵게 하는 질문들

by 글탐가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7)
영웅심에 빠져 외로운 길을 걷는 것과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발 떨이개'가 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남에게 천시받고 낮아지는 비결'을 가르치신다면
당신은 그 가르침대로 바쳐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오늘의 묵상글은 참으로 마음을 어렵게 하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당신은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 위해 믿음의 제물로 자신을 드릴 수 있습니까?'


'물동이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처럼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
소망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별 볼 일 없는 사람,
당신의 섬김마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섬김을 받지 않고 오직 섬기기 위해 당신의 삶을 바치며
그 삶이 다 닳아지기를 원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들을 접했을 때,

마음이 어려워지며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낮아지고 닳아지기를 원하겠는가?

섬김을 받지 않고, 오직 섬기기 위해 삶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마음이 어려워지는 질문을 앞에 두고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한 채 막막하게 앉아 있었다.


"진정,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 대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랜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할 수 없다! 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였다.


낮아지고 닳아진 분의 대명사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그 자체만으로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낮아지심이다. 그것도 모자라 수치스러운 십자가 죽으심까지 복종하셨으니

낮아지고 죽기까지 닳아진 표본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나는 낮아지고 닳아질 수 없는 존재다.

나는 조금이라도 틈만 생기면 높아지고 싶어 하고

섬김 받고 싶어 한다.

내가 낮아지고 닳아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딱 한 가지 방법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내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서야만 낮아지고 닳아질 수 있다.


마음이 어려워지는 질문들 앞에서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점검해보는 좋은 시간이 주어진 것 같다.


"주님! 저는 낮은 자리로 복종하여 내려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십자가 사건을 체휼 했음에도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주께 굴복하는 마음으로, 두 손들고 나아갑니다.

주여! 내게 임하셔서, 나를 다스리시고, 나를 통치하소서!"


마음이 어려워지는 질문들 앞에서

나는 엎드려 기도할 수밖에 없다.

이 기도에 주님께서 응답하시길!

그렇게 또 기도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