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는 성경을 토대로 작가의 드라마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므로 신학적 기준으로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획의도>
최초의 생명체인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는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아담의 이야기를 통해 원죄의 시작이 무엇이며, 또 인간이 왜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인지 말하고자 한다. 더불어 죄인인 아담이 어찌, 오실 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로마서 5장 14절)이 될 수 있는지 말하고자 한다.
<등장인물>
아담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생기를 불어넣은 최초의 생명체이다. 자신의 갈비뼈로 만든 여자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다정한 남편이다. 에덴동산에 동산지기로 임명받아, 각종 생물의 이름도 지어주고, 선악과를 제외한 각종 나무의 열매를 다 먹을 수 있었으므로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다. 이는 그녀가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기로 정해놓으신 선악과를 따먹는 죽을죄를 저지른다. 아담은 사랑하는 아내가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할 수 없었다. 아담은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줄 알면서도 받아먹었다. 그렇게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죽을 죄인의 길로 들어선다.
하와
하와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했기에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없었다. 사실, 에덴동산에서는 옳고 그름을 구별할 일, 즉 죄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하와는 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뱀이 그녀에게 다가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그녀를 미혹한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그녀는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게 되고 사랑하는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한다.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른 채!
결국 하와는 영원한 생명을 잃고 남편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하와는 산고의 고통을 겪어야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뱀
세상이 창조되기 전, 그는 가장 아름다운 천사장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그 은혜를 망각한 채,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이 하나님대신 왕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반역을 저지른다. 하나님은 분노했고, 그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에서 아무것도 없이 먼지만 가득한 황무지로 쫓겨났다. 아무런 소망도 없는 그곳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하나님 나라처럼 아름다운 에덴동산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래 숨어서 지켜보며, 뱀은 속이 뒤틀렸다. 그리고 그는 인간들에게 자신이 지었던 똑같은 죄를 저지르게 만들 계략을 꾸민다. 그 계략에 넘어오기 딱 좋은 여자를 이용해서!
그는 옛뱀, 또는 사단 마귀라 불리는 자로 죄의 근원이다. 그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는 사망의 형벌이 시작됐고, 능수능란한 거짓말과 교활한 속임수로 인류를 사망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줄거리>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 에덴동산에 하나님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은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을 피해 동산의 나무 사이로 숨어 있었다.
선악과를 먹은 이후, 아담은 자신이 벌거벗고 있음을 알게 됐고, 그것이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은 상태였다. 아담은 하나님의 전지하신 능력을 잘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숨은 곳을 다 알고 계실거라 생각하며, 얼른 대답했다. 두려움 때문에 여전히 동산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 채였다.
“제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벌거벗은 것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누가 네게 네가 벌거벗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느냐? 내가 먹지 말라고 네게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아담을 동산지기로 임명하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이 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신 율법을 어기고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먹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속일 수 없음을 아담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라고 제게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제게 주어서 제가 먹었습니다.”
아담의 이야기를 들은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여자가, 대답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먹었습니다.”
여자를 꾀어 선악과를 먹게 한 자의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의 질문은 마치 법정에 세워진 죄인을 신문하며 죄를 명백하게 드러나게 하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그렇게 아담이 선악과를 먹게 된 경위와 여자가 선악과를 먹게 된 경위가 밝혀지면서 여자를 미혹해서 죄에 빠뜨리게 한 죄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뱀은 자신의 교활함을 감춘 채, 순진무구한 얼굴을 동산에서 놀고 있는 하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정말 하나님께서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셨니?”
“아니.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들의 열매를 먹을 수 있어. 하지만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그러면 우리가 죽을거래.”
교활한 뱀은 하와의 생각을 바꿀 기회를 포착하며, 얼른 하와의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아니. 결코 죽지 않아.”
“죽지 않는다고?”
‘걸려들었군.’
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오히려 그것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거야.”
뱀의 말을 들은 하와의 눈에 그 열매가 새롭게 보였다. 그동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는데 뱀의 말을 듣고 보니, 과실의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기에도 좋아 보이고, 또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선악과를 따서 먹었다.
그리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었다. 남편은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바라보며 슬픈 눈빛을 보냈지만, 말없이 그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받아먹었다. 이미 사랑하는 그녀가 선악과를 먹은 후였기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자신을 잠들게 한 후, 자신의 갈비뼈를 취해 만드신 여자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고백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가 남자에게서 취해졌으니 여자라 부르겠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그 아내와 결합해, 한 몸을 이루겠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고, 아담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아내를 사랑했다. 그런 아내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혼자 죽음의 길로 가게 할 순 없어.’
아담은 그렇게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받아먹고 함께 죄(사망)의 길로 들어섰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알게 됐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수치를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눈에 보이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옷을 만들었다. 수치를 모르기 전에 그들은 벌거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덕분에 엄청난 자유를 누리며 살았다. 선악과를 먹은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급급한 나머지 마음껏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자유함을 잃었다.
선악과를 따먹게 된 모든 죄가 드러나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내려졌다.
하나님이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가축과 모든 들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아, 배로 기어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어,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또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임신의 수고로움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네가 괴로움 속에서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나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명령해 ‘먹지 마라’라고 명령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너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네가 일평생 수고해야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것이다. 땅은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너는 밭의 식물을 먹을 것이다. 네가 흙에서 취해졌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이 흘러야 네가 음식을 먹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무화과 잎으로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음에도 그들을 향한 사랑이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었다. 그 사랑은 먼 훗날 자신의 외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연결된다. 가죽옷은 동물이 죽어야 얻어지는 결과물로 훗날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선악과로 인해 알게 된 인간의 수치를 가려줄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어진 것이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열어진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그 길을 통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의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로마서 5장 12절~14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장 17절~18절
아담의 선악과를 먹은 사건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그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그의 DNA를 이어받은 인간들이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이 땅에 태어난다. 하나님과의 분리를 원죄라 한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생명의 원천이신 그분으로부터 생명(호흡)을 공급받을 수 없는 상태이므로, 반드시 죽는 결과를 맞이한다. (실제로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 하나가, 육신으로 살아있는 기간 동안,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 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그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선택권을 주셨고, 그 길로 향하는 문은 안에 잠금장치가 있어, 그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안에 있는 사람이 열어야 나올 수 있는 문이다. 그 문을 열고 나오면 밖에는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예수님은 문고리를 열고 나오는 당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으로 안내하실 것이다.
그렇게 아담은 인류 최초의 죄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오실 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담에게 일어난 가장 중심적인 사건은 선악과 사건이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아담은 절대로 뱀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미혹은 받은 것은 오히려 하와이다.
미혹을 받아 죄를 지은 것은 하와(인간)이고,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받아 먹은 자가 바로 아담이다. 이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죄인의 모습으로 죄를 짊어졌지만, 죄의 미혹을 받지 않아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것은 십자가 사건과 연결된다. 당시 십자가 처형은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다. 예수님은 죄가 없이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 형벌은 통해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며 죄의 댓가를 치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가죽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과 닮아있다.
선악과 사건에서 단지 죄를 지은 아담만 바라본다면 전혀 은혜가 되지 않는다.
선악과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보일 때, 우리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외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그 은혜가 너무 커서,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삶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다스리는 나의 삶보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이 땅에 왜 태어났는지, 왜 이런 환경과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고, 나의 고유한 사명을 발견할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동산지기로서의 사명을 잃은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땅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듯이, 우리 역시 예수님을 만날 때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 일은 수고로움보다 기쁨이 더 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고롭게 땅을 파고 땀을 흘리지 않아서 마음껏 각종 모든 과실을 통해 자유함을 누렸던 에덴동산에서의 삶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