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 사람 속

방송국 사람들

by 정해

월급 80만 원을 모두 택시비로 탕진하던, TV 프로그램 자료조사로 일 할 때였다. 출, 퇴근 시간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지만 이용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PD 한 명, 작가 한 명이 한 팀으로 우리 프로그램은 두 팀이 한 주씩 로테이션했다. 상주하는 PD는 한 명이었는데 자료조사인 나는 그 PD님의 전용 북이었다. 여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이라 직원들이 꽤 많았는데 PD님이 북을 칠 때면 온 직원들이 고개를 들어 쳐다볼 정도였다.


모두가 노트북으로 일 할 때 혼자 데스크톱으로 일하는 소외감, 조연출의 노트북을 빌릴 때마다 듣던 핀잔 정도는 괜찮았다. 꿈이 앞에 있으니까. 야근하다가 늦게 회식에 참석하느라 위치를 물었더니 어느 밥집, 어느 밥집, 옆에 옆에... 이런 식으로 알려주며 얘는 이렇게 말해줘야 안다고, 먹는 거 좋아한다고, 뚱뚱하다고 놀림받을 때도 웃어야 했다. 사실 그땐 뚱뚱하지도, 뚱뚱할 수도 없었다. 뭘 제대로 챙겨 먹을 시간이 있어야 살이 찌지.


프로그램이 방영된 다음 날이면 본사로 들어가 국장님께 시청률표를 받아오는 일이 그렇게 세상 무서웠다. 미로와도 같은 방송국은 들어갈 때마다 헷갈렸고, 국장님은 뵐 때마다 어려웠다. 그 어려움이란 게 국장님께는 또 다르게 보였는지, 매주 기획안을 이메일로 전송하고 그간 전화 한 통이 없었다! 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성심성의껏 전화 한 통 넣었을 텐데.


사실 해고 통보 이전에 국장님이 상주 PD와 외주 PD에게 내 일처리에 대해 물어봤단다. 평소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외주 PD는 국장님 의견에 순순히 동의했고 윽박지르기만 했던 상주 PD는 내 편에 서서 두둔을 해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순간 머릿속에 바람이 휘잉 돌았다. 그 큰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혼을 내도 사람이 미운 적은 없었다. 그 때문이었나 보다.


상주 PD의 아량으로 옆 팀의 자료조사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해고당한 사실을,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내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열심히! 일한다고 달라질 이미지가 아니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 잘린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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