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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Mar 30. 2021

둘째는 싫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너희도 해와 달과 같아.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중요해. 해와 달이 다 소중하듯 너희 둘 다 소중해."

오은영 선생님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책에 나온 내용이다. 모두 소중하지만 더 마음이 가는 쪽은 있다.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도 있듯, 뭘 해도 예쁜 자식은 존재한다. 부모도 사람이니까.


최근에서야 난 외동을 확정했다. 마흔이 넘어서도 많이 낳는다, 고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30대 초중반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실적으로 육아는 장비빨이 아니라 체력빨이다. 특히 미운 4살 아들에게 다정하려면 일단 아픈 구석이 없어야 한다. 지금도 골골송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데 둘째를? 절레절레.

무엇보다 열 손가락을 똑같은 강도로 깨물 자신이 없다 보니 첫째한테 미안하고 둘째가 안쓰럽고, 하는 식의 마음앓이를 굳이(?) 하고 싶지 않다. 둘이 노는 모습 보면 흐뭇하다고? 서로 의지한다고? 케바케, 사바사다.




첫째는 성장앨범도 해주고, 돌잔치도 했는데 둘째는 생략! 첫째는 피아노, 미술학원, 태권도, 수영 다 다녔는데 둘째는 딸랑 피아노 하나! 별 거 없어,라고 말하면 둘째는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 아빠가 되어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면 이해할까.   


"엄마는 오빠만 좋아해."


40년을 살면서 지겹게 생각했고 질리게 말했다.


사실 더 잘못해도 덜 혼났다. 그게 내 유일한 특권이었다. 오빠는 억울하고 또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거 하나뿐이었다. 오빠는 집안의 자랑이었고, 유일한 희망이었다. 모두가 오빠를 칭찬했고 오빠만 바라봤다. 엄마는 오빠 학교에만 갔고 오빠가 원하는 학원은 다 보내줬다. 아웃풋이 좋았으니까. 

난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서,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에 들어가지 못해서, 끝끝내 엄마 아빠의 자랑거리가 되지 못해서 속상했다. 따지고 보면 그저 속상하고 말 일이었다. 첫째의 부담감에 비하면.

아주 어릴 적, 엄마 아빠가 오은영 선생님 말씀처럼 저렇게 말해줬다면 나는 이 생각을 끊을 수 있었을까.




어릴 적에는 오빠가 같이 놀아줬고, 오빠한테 의지했다. 그럼 오빠는? 첫째는? 동생하고 노는  좋을까? 동생한테 의지할까? 첫째에게는 동생이 과연 좋을까? 좋은 점이 있기는 할까? 망설이다 보니 어느덧 마흔이고 터울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첫째가 딸이었다면 둘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둘째가 아들이어도 딸이어도 좋으니까. 첫째가 아들이라 둘째까지 아들이면 너무 힘들 것 같고, 딸이어도 딱히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는 내가 겪어봐서 아니까, 열에 아홉은 데면데면하니까.

혼자는 외롭다고, 동생 만들어주라고 말을 더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둘째예요?"


덧)

엄마에겐 딸이 있어야 한다! 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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