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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Apr 02. 2021

딸은 싫다

엄마의 니즈

사춘기가 절정일 때는 내가 니 친구냐며 혼쭐을 냈던 엄마가, 같이 늙어가는 지금은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우린 둘 다 필터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뒷맛은 늘 씁쓸했다. 말을 뱉으면 공기 중에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이런저런 불순물들이 뒤섞여 결국 다시 우리 입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나면 슬픔이, 외로움이 손을 쓸 수 없게 단단히 굳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딸이 있어 좋다, 고 했다. 정말?


딸에게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딸도 엄마에게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그래서 둘은 돈독하다. 그만큼 둘은 자주 싸운다. 어느 날엔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서로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말자고 했다. 서로에게 못할 짓 같다고. 그랬더니 만남도, 이야기도 줄었다. 마음을 나누지 않으니 겉돌았다. 결국 우린, 살아온 대로 살기로 했다.




네 살 아들 손을 잡고 커피숍을 가면 그렇게 주위에서 한 마디씩 한다. 엄마에게는 딸이 있어야 한다고. 요즘은 딸이 대세라고. 아들 필요 없다고. 딸이 비행기 태워준다고. 저도 알아요 그 레퍼토리!


엄마가 칼에 손이 베었을 때 딸은 "엄마 아파? 내가 호~해줄게!" 한다면 아들은 아프거나 말거나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다. 저러다 다치진 않을까 오히려 엄마가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그때부터 갈린다.


딸에게는 따듯함을 기대한다. 가족의 생일을 챙기는 것도, 엄마 아빠의 싸움을 중재하는 것도, 건강을 챙기는 것도,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모두 딸의 몫이다. 그리고 딸은 결혼을 하면 더 챙긴다. 챙겨야 할 것 같은, 이 기분 마치 친정?   


반면 아들에게 바라는   하나,  앞가림이다. 처자식만  건사하면, 어디 아프지만 않으면, 사고나 치지 않으면 된다. 아들은 결혼하면 본가는 안중에도 (어보인). 아내가 시댁을 챙기지 않으면 서운해하는데 그때야 비로소   있다. 가족애를 드러내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마마보이라고 생각한다. 남편 말에 의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들의 단순함이 더 끌렸다. 딸의 감정선을 맞춰줄 만한 그릇도 아니지만 샤랄라 핑크 핑크를 너무 싫어했다. 그저 내(엄마)가! 매일 아침 머리를 예쁘게 묶어줄 솜씨가 아니니 몸이 축나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니 모든 엄마에게 딸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엄마의 성향에 따라 원하는 성별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뭐,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첫째 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아마도) 살림 밑천이란 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첫째 딸은 아들의 든든함도 딸의 따듯함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요구되어 왔으니까. 어쩌면 딸들은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자라왔던 건지 모른다. 타고난 성향이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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