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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Jun 15. 2021

자존감 도둑이 싫다

귀머거리 삼 년이면 될까?

무언가에 푹 빠지면 한동안은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젊은 날의 열정이었을지도, 뒤늦은 사춘기였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희귀한 행복이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마구 뛰었다. 너무 좋아서. 그때마다 달려와 진정제를 주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들어간 동아리는 신세계였다. 몇 달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셨다. 선배, 동기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오죽하면 얼차려마저 즐겼다.

와중에도 수업은 수업대로 들었고 과제도 빠짐없이 제출하여 1학기에는 장학금까지 받았다. 이 정도면 눈 감아줄 법도 한데 엄마는 매번 혀를 찼다. 술이 떡이 되도록 먹고 들어오는 딸이 못마땅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런 대학, 그런 동아리의 선배가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선배, 선배 하며 따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 딸이 그런 대학, 그런 동아리에 있어요. 동아리가, 선배가 전부였던 그때 하필...




중고등학생 때 다들 한 번쯤은 간다는 콘서트를 27살에 처음 갔다. 가수의 팬페이지에 들어가는 순간, 게임 끝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그곳에서는 모두가 흠뻑 젖어있었다. 사실 가랑비가 성에 차지도 않았다. 풍덩 빠져 흠뻑 젖고 싶었다.

그 가수는 이제 막 오랜 침묵을 깨고 컴백을 했고 팬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콘서트 장을 찾았다. 온몸에 털이 바짝 서는 희열을 처음 맛보았다. 심장을 사정없이 때리는 웅장한 스피커 앞, 이리저리 휘둘리며 쉼 없이 뛰었던 그 두 시간을 잊지 못해 끊임없이 콘서트 장을 찾았다. 그러던 중 부산 콘서트 예매에서 기적 같이 앞 번호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진심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엄마한테 자랑을 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 말에 이상하게 뼈가 아팠다. 꼭, 부산까지 가야 해? 그게 A구역 2번인데. 우습게도 그 한 마디에 난 또 취소를 했다. 대충 둘러대고 몰래 갔어도 됐을 일을!


활동 끝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려왔고 온갖 굿즈란 굿즈는 다 가져야 성이 풀렸던 나의 덕질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났다. 가수에 대한 배신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쏘아 올린 비수들이 심장 곳곳에 꽂혀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막판에 이것저것 다 팔더니, 저러려고 그랬구먼! 장사꾼이야, 장사꾼! 멍청하게 또 저런 거에 넘어가서는 다들 죽네 사네! 쯧쯧.


누군가를 조건 없이 좋아하고 매번 설레고 맘껏 즐길 수 있는, 스무 살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게 엄마한테는 불조심 포스터의 어떤 문구처럼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 그래서 꼭 밟아 없애야 하는 불씨였던 것 같다.  




브런치를 추천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작가 승인을 받기 힘들다는 글을 어디서 봤는지, 처음에는 됐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음 메인에 내 글이 오르기를 기대하기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무슨 죄다 광고야, 다음 메인에 있는 글도 별로던데, 별 볼 일 없어 이제는 클릭도 안 하게 되더라...! 물론 광고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고, 다음 메인의 글 수준이 매번 뛰어난 것도 아니니 그것 역시 사실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기운은 빠졌다.


무언가에 빠져 있을 때! 이제 좀 살 만하다! 살 맛 난다! 싶은 찰나를 건드렸다. 따지고 들면 동아리의 선배를, 막무가내로 상품을 팔아대던 가수를, 다음 메인에 오른 브런치 글을(혹은 플랫폼을) 욕한 거라 말하겠지만. 그 안에 내가 있잖아! 그게 무엇이든 이딴, 취급이 싫다. 이딴 거나 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지금도 아, 그때 정말 푹 빠졌었지! 좋았었는데! 생각하며 웃고 싶은데, 그리워하고 싶은데 엄마는 여전히 흉을 본다. 지겹게도.




엄마랑 쇼핑을 할 때였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엄마는 급하게 탈의실로 들여보냈다. 별로였나 보다, 생각하고 다시 나왔을 때 엄마는 이미 멀리 떠나고 없었다. 내 꼴이 너무 창피했단다. 옷의 핏이 살았을 때는 한없이 박수를 쳤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멀리 도망을 갔다. 엄마 치고는 참, 객관적인 눈을 가졌다! 생각했는데 그냥 자존감 도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늘 별로거나 탐탁치 않았고, 가끔 좋았지만 결국 나빴다. 최근 자존감에 관련된 책을 읽어봤다. 이럴 경우 엄마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엄마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말에도 휘둘렸다.


가령 A가 B의 단점을 얘기하면 그때부터 B의 단점들만 보였고, A가 퇴사를 하겠다고 하면 점점 회사의 문제점들이 보였다.


내 문제라면, 괜히 애꿎은 엄마만 자존감 도둑으로 몰았다면 이제 답은 하나 뿐이다. 귀를 닫는 것! 자존감을 키우기에 앞서 일단 지키는 일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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