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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Jun 28. 2021

모유수유, Into the Unknown

출산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것이었다면

모유수유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할 때

한번 더 내려놓아야 비로소 문이 열리는 새로운 세계였다.


'관장, 내진, 제모' 이를 분만 3대 굴욕이라고 한다.

분만을 앞두고 난생처음 관장을 했을 때

진통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내 의지로 통제되기 힘든 괄약근에 힘을 주며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머지 굴욕들을 당할 때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 몸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그제야 아들의 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출산 후 입원실에 누워

아기가 태어났으니 이제 젖을 물려야지

분유보다는 모유가 좋다니 일단은 모유수유를 시작해 봐야겠다.

이런 낭만적인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병원의 모유수유 상담실로부터

이런 가슴으로는 모유수유가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임신 중에 무섭게 불러오는 배만큼 점점 커져가는 내 가슴도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출산이 내 맘대로 될 것이라는 착각보다 훨씬 어리석은 일이었다.


모유수유는 엄마의 가슴, 엄마의 체력, 엄마의 의지,

아기의 인내심, 아기의 체력 등 모든 것이 합을 이루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너무나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바보 같은 초보 엄마였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근 마켓을 통해 수유쿠션구해놓은 것이 전부였다.

수유복 하나 없이 임신 중에 입던 남편의 후리스를 입고

무모하게 모유수유의 세계에 몸을 담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모양새다.


출산 3일 차, 뒤늦게 모유수유에 대한 공부와 준비를 시작했다.

마사지를 받아 딱딱하게 뭉친 가슴을 풀어주었고,

주변의 출산 선배들에게 연락하여 조언을 구했다.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수유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수유를 위한 옷을 다섯 벌 구매했고,

모유의 양을 늘리고 질을 좋게 한다는 영양제를 몇 통 구입했다.


이때의 나는 모유에 대한 집착으로

남편과 시어머니 심지어는 처음 보는 사람들(마사지 선생님, 산후도우미 선생님 등) 앞에서

훌렁훌렁 가슴을 내보이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유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출산으로 망가진 몸으로 한 시간마다 잘 나오지 않는 젖을 쥐어짜며

한 방울이라도 더 먹이려 애를 썼다.

신생아는 하루에 10번, 12번도 수유를 하는데

처음 며칠은 매 수유 때마다 아기도 울고 나도 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맘 카페에는 모유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 글에는 다음과 같은 위로의 댓글이 달리곤 한다.

"요즘에는 분유도 잘 나와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죠. 너무 모유에 집착하지 마세요."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시절 나는 왜 그리 쉽게 포기하지 못했을까.

심지어 지금까지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단유'를 고민하면서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기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아무리 모유의 영양이 완벽하지 않다 해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입해온 원료로 공장에서 만들어낸 분유보다는

눈곱만큼이라도 더 나은 점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모유수유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한정판 경험'이라는 점이다.

인생에서 6개월 길면 1년 아기와 부대끼며 둘 만의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젖병으로 수유를 할 때보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진하게 아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분유만 먹고도 잘 크는 아기들은 많고,

모유만 먹고도 잔병치레가 많은 아기들도 많다.

모유를 주고 싶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못 먹이는 경우도 많다.


아직까지는 꾸역꾸역 모유수유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수유를 할 때마다 전쟁에 가깝다.

너무 많이 나와서 울고, 잘 안 나와도 울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와도 울고

심지어 이제는 그저 울기만 하는 귀여운 신생아도 아니다.

온몸을 비틀어대고, 온 힘을 다해 발로 나를 차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아기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과감하게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 전쟁 같은 식사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날이 올 때까지

울고 웃으며 한번 해보려고 한다.

아기가 양껏 먹고 기분이 좋아 짓는 치명적인 표정에

이미 중독되어 버렸나 보다.


너와 나의 연결 고리


<남편의 참견>

아들! 밥만 잘먹어도 칭찬 받는 시기가 머지 않았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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