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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May 15. 2022

노잼도시에 사는 맛

#최애 #빵돌이 #성심당

자타 공인 노잼 도시인 대전에 산다. 대전에는 서울의 흔하디 흔한 핫플레이스도 전주비빔밥이나 수원왕갈비 등의 지역 대표 메뉴도 없다. 하지만 장기하 노래마따나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하시길. 난 괜찮다. 나는 전혀 부럽지가 않다. 왜냐하면 대전에는 성심당이 있으니까.


물론 심드렁하게 반응할 수 있다. 예전에는 나도 그랬다. 적어도 다시 대전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대전의 직장으로 옮기는 바람에 10여 년 만에 귀향했다. 대전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타지에서 산 터라 타향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한번은 기념일 케이크를 사야 하는데 어느 빵집에서 사야 할지 몰랐다.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추천해 주는 빵집이 있었다. 그곳은 동물성 생크림을 쓰고 당일 생산해 판매한다고 했다. 게다가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심당 출신 셰프가 만든다는 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전에는 성심당 후광효과가 상당했다. 대전 시민들의 성심당 사랑이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미처 알지 못했다.


글쎄, 팔은 안으로 굽는 것 아니냐고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하는 법이니까.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한번은 서울에 사는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빈손으로 가기 뭣해서 성심당 튀김소보로와 부추빵을 사 갔다. 성심당 로고가 새겨진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 놓자 친구는 반색을 했다. 연예인을 실물로 영접했을 때처럼 환하게 웃었다. 혹시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이후 친구의 전언에 따르면, 사무실에서 팀원들이랑 나눠 먹었는데 금세 동이 났단다.


겨우 한 사례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려는 것 아니냐고요? 또 한번은 다른 친구에게도 튀김소보로 세트를 선물했다. 그 친구 역시 똑같은 일을 목도했다. 동료들이 게눈 감추듯 빵을 먹어치우는 것을. 더 없냐고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다음엔 더 많이 사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비단 내가 직접 겪은 일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21장 25절에서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만일 성심당이 행한 일이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다.


성심당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하나만 고르는 건 고역이다. 웬만한 빵이 다 맛있는 데다, 시그니처 빵도 꽤나 많아서다. 이건 유애나에게 아이유 노래 중에서 하나만 고르라는 주문과 같다. 그래서 베스트 투를 꼽으려고 한다. 성심당 대표 메뉴로 튀김소보로와 부추빵만 알고 있다면 눈여겨보시길. 


먼저 순수롤이다. 작명 센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순백의 생크림이 포인트다. 그것도 무려 100% 순우유 생크림이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오겡끼데스까라고 외치는 장면의 설원을 한 스푼 떠먹는 기분이랄까. 특히 차갑게 먹으면 생크림 맛이 배가 된다. 아울러 순수롤의 근본은 카스텔라를 돌돌 만 롤케이크다. 카스텔라의 미덕은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을 때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폭신폭신함, 혀에 닿았을 때 눈꽃처럼 사르르 녹는 촉촉함이리라. 감히 단언컨대 순수롤은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한다. 혼자서 냉동고에 숨겨 놓고 먹는 게 제일이지만 선물로도 제격이다.


다음은 15겹 크레페 케이크다. 크레페는 프랑스식 팬 케이크다. 미국의 도톰한 팬 케이크와 달리 종잇장처럼 얇다. 크레페 한 장 한 장 사이에 생크림을 발라 층층이 쌓은 게 크레페 케이크다. 웬만한 베이커리에서 크레페 케이크를 팔지 않는다. 짐작했겠지만 노동 집약적이어서다. 오븐이 아닌 프라이팬으로 일일이 한 장씩 굽고 층층이 쌓는 지난한 작업을 떠올려 보시길. 15겹이라는 건 이 과정을 열다섯 번 반복했다는 말이다. 


가끔 크레페 케이크를 포크로 잘라먹는 경우가 있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지만 이왕이면 이렇게 먹는 걸 권한다. 포크의 뾰족한 끝으로 생크림이 묻은 크레페 한 장씩 벗겨낸 뒤에 돌돌 말아먹는 식이다. 크레페 케이크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도 없다.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울 게 틀림없으니까. 덧붙여 둘째 조카가 대전에 오면 잊지 않고 찾는 케이크다. 어른은 물론이고 까다로운 아이들 입맛도 사로잡았다는 뜻.


앞으로 노잼 도시 대전에 방문할 일이 있으면 성심당에 꼭 들르시길. 첫 방문이면 튀김소보로와 부추빵 코너로 직행하고, 두 번째 방문이거나 진열대의 수많은 빵 종류에 어지러움증을 느끼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에는 순수롤과 15겹 크레페를 고르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다른 건 다 잊어도 괜찮지만, 순수롤과 15겹 크레페, 두 가지는 기억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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