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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Jun 06. 2022

스노볼과 행운

#여행 #실수 #인연 #선물

2016년 9월 어느 날 밤, 나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있었다. 무작정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익스큐즈 미. 그들은 하나같이 내 말을 마저 듣지도 않은 채 손바닥을 내보였다. 나는 지하철 잡상인처럼 거절당하고 있었다. 번번이 퇴짜를 맞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어린 두 딸과 함께 있는 가족에게 다가갔다. ”아 유 인터레스티드 인 디스 스노 글로브?” 내 손에는 샌프란시스코 랜드마크, 금문교 스노볼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로부터 사흘 전, 그러니까 샌프란시스코 여행 둘째 날 나는 금문교에 있었다. 분홍빛 석양에 물든 금문교를 뒤로 하고 기념품 가게에 들어섰다. 수많은 기념품 가운데 스노볼이 눈에 들어왔다. 강남역 12번 출구 앞 인파 속에서도 그녀만 보이듯이. 한마디로 한눈에 반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노볼에선 광채가 났다.


유리돔 안에는 금문교 축소 모형이 들어 있었다. 유리알이 제법 굵은 데다 금문교 모형의 만듦새가 꼼꼼하고 세련됐다. 특히 두 손으로 잡고 가볍게 흔들면 은빛 입자들이 유리알을 가득 채웠다가 침강했는데, 꼭 금문교를 휘감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느 관광지의 작고 조악한 스노볼과 달랐다. 이 애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포장 상자를 뒤집어 값을 보고 주저했다. 가격표에는 30불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통 스노볼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나 비쌌다. 그렇다고 딱히 스노볼을 대체할 만한 기념품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맥주 한 잔 곁들인 저녁 식사를 포기하기로 했다. 여행하고 남는 건 사진만이 아니다. 기념품도 추억을 열어주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지금도 스노볼 덕분에 글을 쓰고 있으니까.


샌프란시스코 공항 출국장에는 자정 무렵이어서 그런지 탑승객이 그리 많지 많았다. 나는 백팩과 트렁크를 엑스레이 검사대에 올리고, 게이트 너머 풍경을 바라봤다. 공항에서나마 언제 다시 올 지 모를 이 도시의 풍경과 공기와 분위기를 두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때 공항 보안요원이 한 손으로 나를 가로막았다. 모니터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손을 까딱거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거구의 보안요원 손에는 행여 깨질까 봐 여러 겹으로 포장해 트렁크에 고이 모셔 둔 스노볼이 들려 있었다. 그의 빠르고 단호한 영어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연거푸 쏘리, 라면서 되물었지만 그는 한국 학원의 원어민 강사가 아니었다.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때 나는 겨우 맥도널드를 벗어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주문하는 회화 정도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노볼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건 분명했다.


문제는 스노볼의 찰랑이는 액체였다. 스노볼 액체가 기내 반입 기준을 초과한다는 걸 나는 겨우 눈치코치로 알 수 있었다. 기내에는 100밀리리터 이하의 액체만 소지할 수 있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공공기관 직원이자 소시민으로 기내에서 테러는커녕 작은 소동조차 부리지 않을 것이며, 더더군다나 스노볼을 무기로 쓸 일도 없다는 걸 설명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보안요원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항변도 하지 못한 채 쫓겨나듯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사랑스러운 스노볼을 한국으로 데려갈 방법은 단 하나, 비행기 화물칸에 짐으로 부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터미널은 자정이 넘어서 셧다운 한 것처럼 적막했다. 항공사 직원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겨우 안내 데스크 직원을 찾아 물었다. “이 스노볼을 짐으로 부칠 방법이 없을까요?” 돌아온 답은 어렵다는 말이었다. 내가 타려는 에어캐나다 카운터는 이미 한 시간 전에 마감했다고 했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너와 함께 한 시간은 사흘에 불과했지만 널 향한 내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규정에 무지한 어리석은 나를 용서해달라고, 스노볼에 속삭였다. 핸드폰 카메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작별인사로 내가 이 애에게 빠졌던 그 장면을 연출했다. 반짝이는 입자들이 금문교 모형을 감싼 채 황홀하게 가라앉았다.


여자 아이들은 겨울밤 눈처럼 고요히 금문교에 내리는 입자들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단박에 스노볼에 홀린 듯했다. 부모가 거두절미하고 내게 물었다. “얼마인가요?” 그 말에 나는 입안에서 적절한 영어 단어를 고르다가 프레전트라고 답했다. 다소 어리둥절한 부모와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기프트 포 유어 도우터스” 그제야 부모의 얼굴이 환해졌다. 부모는 연신 고맙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스노볼이 제 주인을 만나 다행이라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좋다고 짧은 영어로 말했는데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부모는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한 친구 내외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서두르려고 했단다. 두 딸아이는 눈꺼풀이 무거운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부모 마음도 모른 채 더 있다 가자고 보챘던 모양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다 나를 만난 것이다. 부모는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한 내게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행운을 만나려고 아이들이 자신을 붙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만난 건 내게도 행운이었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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