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엄마 #공원
부모님과 산책하러 공원에 갔다.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는데도 팔각정이 비어 있었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정자 처마와 기둥이 만든 프레임으로 초록이 밤하늘 별처럼 쏟아졌고 유월의 짙은 풀 내음이 은은하게 퍼졌다.
잔잔한 풀벌레 울음 사이로 탕, 하고 정체 불명의 소리가 튀었다. 호숫가에 던진 돌멩이가 일으킨 마찰음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툭, 하는 무딘 소리가 났다. 이어서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아니, 이렇게 쳐야지.” 약간 신경질 섞인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무심히 들었는데, 데시벨이 커질수록 귀를 쫑긋 세우게 됐다. 여자의 말이 다시 날아와 귀에 꽂혔다.
“너무 멀어. 바람이 이렇게 불잖아. 서브도 못하면 범실이야.”
이어서 남자애가 푸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난 서브가 너무 어려워.”
팔각정 옆에서는 모자가 배드민턴을 치는 모양이었다. 이따금 라켓에 셔틀콕이 맞는 소리가 났고, 엄마가 아이에게 배드민턴 치는 요령을 알려주는 말소리가 그보다 잦게 들렸다.
엄마가 다시 말했다.
”이렇게 쳐야지.”
“아니, 난 그러려고 하는데……”
아이는 제 마음도 모르고 나무라는 엄마에게 하소연하려다 마는 거 같았다. 엄마는 가르치는 대로 치지 못하는 아들이 답답했겠지. 툭. 아무래도 아이가 셔틀콕을 허공에 띄워야 하는데, 땅바닥에 메다꽂은 모양이다.
”정확히 맞춰서 쳐야지.”
”아니……”
문득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배드민턴을 배우던 게 떠올랐다. 나도 셔틀콕을 공중에 띄우는데 애를 먹었다. 라켓이 말을 듣지 않아서였다. 셔틀콕이 바닥으로 향하는 바람에 랠리는 번번이 끊겼다. 아버지는 요령을 설명해줬지만 나에게는 그저 잔소리로 들렸다. 아마도 내가 저 꼬마였다면 라켓을 냅다 던지고 소리쳤을 것이다. 나 안 칠래.
탕. 경쾌한 음이 울렸다. 분명 셔틀콕이 라켓에 정으로 맞는 소리였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이는 열한 살, 열두 살쯤 되어 보였다. 조카만 했다. 꼬마가 의기양양하게 라켓을 든 채 이렇게 말했다. “자꾸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잘 됐어.” 엄마는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답했다. “”잘했어.”
세상은 자신이 말하는 대로 펼쳐진다. 할 수 있다고 버릇처럼 되뇌면 해내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걸 넘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자꾸 안 된다고 하면 잘될 일도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한 번쯤 장애물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렇게 말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거봐, 내가 안 될 거라고 했잖아. 제자리에 있으려는 관성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간 아이에게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