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시간관리 #회사 #인생
이건 회사에서 소문이 가장 늦게 당도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이지, 왕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소문은 나에게만 연착했다. 그렇다. 내 이야기다. 이번엔 어느 팀 아무개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올해 가을에 식을 올리기로 했단다. 당장 이번 주는 아니니까 그리 늦게 안 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직원에게 만나는 상대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니 한 단계 건너뛰고 날아온 소식에 적이 놀랄 수밖에.
사실 이건 약과다. 얼마 전에는 같은 팀 직원이 결혼식 날은 물론이고 신혼여행지까지 잡은 걸 나만 까맣게 몰랐다. 동료들이 테이블에 모여서 신혼여행지를 소재로 삼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사이에 끼어들어 뜬금없이 “결혼하세요?”,라고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 이럴 땐 슬쩍 묻어가는 편이 낫다. 드라마 중간부터 보기 시작했다고, 극이 한창 전개되는데 스토리 요약을 해달라고 할 순 없으니까. 나는 맞장구를 치고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나에게 같은 회사에 다니는 J는 “종종 회사 사람들도 만나”라고 조언했다. 저녁이 어려우면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라고 했다. J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날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내가 회사에서 겉돌까 봐 걱정을 한 모양이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와서 겉으로나마 그러겠노라고 했다. 하긴, 다른 부서 사람들과 밥 한 끼라도 먹으면 업무 협조를 받기도 수월하다. 회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동안에는 회사 사람이니까.
실은 2년 전엔 이렇지 않았다. 나도 회사에서 나름 인싸 축에 들었다.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차를 타고 외식하러 나갔다. 이따금 선약이 잡혀 있는 터라 당일 오전에 밥을 같이 먹자는 제안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순번 대기표를 발급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녁에는 식사를 하면서 종종 반주를 곁들였다. 아예 처음부터 술자리로 시작한 날 2차, 3차를 외치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회사 동기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구는 나를 말리느라 애를 먹었을 것이다.
내가 얌전해진 건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서서히 증가하다가 올해 초부터 갑작스럽게 급증했다. 하루 확진자가 1백 명대만 나와도 게거품을 물었는데 이제 그때가 그리울 정도로 는 것이다. 포위망이 도망갈 틈도 주지 않고 좁혀 오는 듯했다. 누군가 나를 밀고라도 한 것처럼.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한동안 구내식당에도 발길을 끊었다. 팀 동료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은박 포장지로 싼 김밥 한 줄을 들어 보였다. 때때로 김밥 한 줄은 샌드위치나 샐러드로 변했다.
혼밥 하는 날이 하루이틀 늘어나면서 소외되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괜찮을 줄 알았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러다가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에도 혼밥을 하게 될까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혼자 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사실 코로나 감염 위협이 소외 위협보다 크기도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 확진자 발생 문자가 울린 데다, 아토피가 심해질 우려가 있어서 백신을 맞지 않아서다. 어쨌든 타의로 시작한 일인데 의외로 점심시간을 오롯이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치 매일 같이 보너스를 받는 것 같았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 양치질하고 자리에 앉기 바빴던 날에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요즈음 아침이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점심에 뭘 할지 정하는 것이다. 날이 좋으면 회사 근처를 걷는다. 일전에 며칠간 걸었더니 속이 더부룩한 소화 불량 증상이 사라졌다. 가방에 책을 챙겨 간 날에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또 하루는 최근 인기곡을 몰아서 듣기도 했다. 오전부터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계획과 관계없이 드라이브를 한다. 그러고 나면 빨갛게 부어오른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라앉는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편인데, 정작 모자란 건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낼 마음이었다. 달리 말하면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무얼 삶의 최우선 순위로 정하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진다고 믿는다. 시간과 공을 들인 순서대로 성취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일 순위에 남이 아닌 나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두면 삶도 그렇게 변하겠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를 일 순위로 정하는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국 우리는 혼자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