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리드, 영화 오프닝처럼 써라

by 김민호
오프닝.jpg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석권한 영화 <라라랜드>의 오프닝.

영화 오프닝은 요약이자 선언

LA 꽉 막힌 고속도로. 수 십대 차량에서 제각각의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온다. 점차 소리가 뭉개지면서 하나의 음악으로 바뀐다.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노래를 부르며, 차에서 내린다. 그 노래가 바로 첫 번째 트랙 <Another day of sun>이다. 이어 다른 차량에 타고 있던 남성들이 내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각자의 멜로디로 화음을 이루면서 말이다. 유쾌한 음악과 춤, 화려한 색감이 어우러진 <라라랜드>의 오프닝이다.


이 장면이 <라라랜드>가 앞으로 그려낼 이야기의 요약이자,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이다.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한바탕 군무라니, 영화 도입부부터 뮤지컬 영화라는 사실을 천명한다.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뜬다는 <Another day of sun>은 이 영화가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그렸다는 점을 암시한다. 또한 제각각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뭉개지며, 한 여성의 노래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는 무수한 청춘남녀 중 앞으로 배우 지망생 미아, 가난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예고하는 것이다.


리드는 보도자료 전체의 요약

보도자료 리드도 마찬가지다. 리드는 뒤이어 나오는 보도자료 전체 내용의 요약이다. 짧고 간결한 3~5 문장으로 전체 내용을 아우른다. 이래야 기자가 짧은 시간 안에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기사로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리드만 잘 쓰면 본문은 무난하다. 리드에 등장한 3~5 문장을 구체적으로 풀어쓰면 그만이다. 그래서 제목 뽑기 다음으로 리드를 쓰는 게 어려운 것이다.


잘 쓴 리드를 보면서 한수 배워보자. 조선일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가 쓴 'DNA 1곳만 콕 집어내 '유전병 운명' 바꾼다(2017.10.26)'이다. 겨우 다섯 문장만 쓰였다. DNA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도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아래를 읽고, 문장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①돌연변이가 일어난 DNA를 잘라내지 않고도 유전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다. ②DNA 가닥은 그대로 두고 그 안의 일부 화학구조를 바꾸는 방법이다. ③이를테면 생명의 설계도인 DNA에서 책장은 손대지 않고 글자 하나만 바꾸는 셈이다. ④인간 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돼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전망이다. ⑤미국 하버드대와 MIT 연구진은 각각 독자적으로 이 기술을 개발해 과학 학술지 양대 산맥인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동시에 발표했다.


①은 새로운 유전병 치료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사실이며, ②는 새 치료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한 단계 더 들어가 설명한 셈이다. ③은 비유를 들어 새 치료기술을 설명했다. 결국 ①~③은 새로운 유전병 치료기술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④는 이 치료기술 개발이 갖는 의미를 말해준다. ⑤는 이 기술을 개발한 연구진, 이 연구내용이 실린 논문을 알려주고 있다. 위 네 문장이 기자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명백한 사실임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리드에 공을 들이자

가끔씩 리드에 일기를 쓰는 경우가 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열하는 일기 말이다. 이게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에 대한 보도자료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과학기술 분야는 처음 접하는 낯선 용어가 범람하는 게 다반사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기자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보도자료에 실릴 만한 내용은 대부분 최신 과학 성과이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3~4 단락을 읽어도 핵심을 파악할 수 없는 보도자료는 재앙이나 다름 없다. 기자가 엄청난 인내심의 소유자거나, 어지간히 쓸 기사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보도자료가 선택받을 확률은 극히 낮다.


처음부터 리드를 잘 쓰지 못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퇴고라는 찬스가 있기 때문이다. 수없이 고쳐도 뭐라고 하는 이가 없거니와, 고칠 수록 좋아지는 게 퇴고다. 처음에는 일기를 쓰듯이 보도자료를 썼더라도, 퇴고를 할 때 만큼은 리드에 공을 들이자. 보도자료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이 리드만 읽어도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으면 성공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좋은 기사를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게 왕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성공한 SNS 캠페인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