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편에 "인지적 편향"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늘은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강력한 인지적 편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그리고 나의 행복을
오로지 일에서만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일 외에 다른 곳에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
행복은 또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한 때는
"목표만 있으면 달릴 준비가 됐는데..." 라며
스스로를 “공회전하는 스포츠카” 같다고 여겼던 때도 있었고,
워라밸 같은 거 필요 없으니
하루 종일 일만 하며
일에 미쳐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냥 일이 나의 전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어딘가 꼭 있으며,
그 일을 찾기 전에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러니 나의 행복을 위해 기필코 나에게 맞는,
나를 미치게 할 "그 일"을 찾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눈녹듯이 사라져 버린 건
연구원 시절,
출근길에 콧노래를 부르는 나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내가 연구원으로 일하며
계속 이 길로 나아가 보겠다고
결심을 하자마자
야속하게도 GPT가 성행했다.
내가 이 길을 걸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시간 강사를 시작하고,
지금의 이사님처럼
정책 자문위원이 된다던가 하는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AI가 그 자리를 다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에 존재하던 성장의 로드맵은
그렇게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갔고,
이 길의 끝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내 하루하루는 또 다시
"이거 해서 뭐해?"라는 질문 속에 파묻힐 것이 뻔하니
나는 또다시 그놈의
[나를 미치게 할 일]을
찾아 나서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나는 그냥저냥, 어찌저찌 출근을 잘했다.
점심먹은 뒤 커피를 사들고
박사님들과 시덥잖은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빨리 집에 가겠답시고
야근하며 햄버거를 와구와구 먹고있는
순간에도 즐거웠다.
분명 그 일을 찾아내기 전에는,
끝내 행복하거나, 안온하거나
평안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날들이
그럭저럭 살만했다.
이전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던
"일을 왜 하기는~ 그냥 하는 거지 뭐"
라는 말도 왜인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그렇게 "그런대로 괜찮은"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급기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박자를 타며 출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와...나 아직 좋아하는 일 못 찾았는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근데...나 지금 되게 괜찮은데?
좋은데..?
벚꽃이 너무 예뻐서 였을까?
아니면 바람이 좋아서?
혹시 스포티파이가 랜덤으로 재생해 준 재즈가
너무 나의 취향이어서..?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다 말고
메모장을 켰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인지적 편향이었던 것들을 적었다.
1) 미친 사람처럼 좋아하는 일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다.
2) 일이 아닌 다른 정체성의 나도 엄연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