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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 Jan 06. 2022

나 홀로 서울 : 서울 상경 일기

Movie: 나 홀로 집에




스무 살의 봄을 생각하면 괜스레 안쪽 어금니가 시려온다.     



 너에게 서울 상경이란 뭐였을까. 학교에 다닐 땐 말이다. 마냥 서울에 가고 싶었다. 영어 지문 하나, 서울에 가고 싶다. 미적분 문제 하나, 서울에 가고 싶다. 비문학 지문 하나, 광주를 떠나고 싶다. 그래, 광주를 떠나고 싶었다. 서울 상경 이퀄 광주를 떠나는 것.     



 광주는 너에게 어떤 공간이었지? 광주, 광주란 단어를 내뱉어 본다. 센입천장소리인 기역 때문에 혀는 입천장에 닿았다가 ‘주’를 말할 땐 잇몸에 닿는다. 계속해서 광주란 단어를 불러본다. 어느 순간 단어는 나에게서 멀어진다. 동시에 광주는 나에게 낯선 곳이 된다. 아직까지도 나는 광주에게 낯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광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열여덟, 수학 학원에서 같은 반 아이를 붙잡고 나는 진지하게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광주에서 벗어날 거야.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어. 그 수학 학원은 아파트 1층에 위치했는데 영어와 수학이 함께 있는 일종의 종합 과외 학원이었다. 수학 반이라 칭하는 방문을 벗어나면 맞은편 방문이 나오는 그런 구조였다. 광주에서 벗어나야 함을 토로하던 그때, 그 맞은편에서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열아홉, 수험생들이 남아 문제를 풀고 있었다. 열띤 나의 포부를 끝낸 채 수학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녀들은 웃고 있었다. 웃겼겠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부리나케 학원 밖을 빠져나간다. 아파트를 뛰쳐나오면서도 그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광주를 떠나야 해.          



스물, 그렇게 광주를 벗어났다. 아니, 그땐 벗어났다고 믿었다.      



 서울에 가는 것이 확정됐을 때 기분은 어땠어? 허무함이 몰려왔다. 매일 밤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서울에 가면 하고 싶은 것들. 쪽지에 그것들을 하나씩 적어서 언니가 일본에서 사 온 도라에몽 저금통에 집어넣었다. 몇 살엔 이걸 할 거야. 그리고 여기서 이걸 해야지와 같은 버킷리스트들. 그런데 막상 서울에 가게 되는 것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그런 것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버킷리스트들을 적을 때의 설렘들은 사라지고, 남겨진 것은 쪽지에 적힌 글자들 뿐.           



 너의 첫 서울은 어디였어. 나의 첫 서울은 학교 근처도 아닌, 서울에 살고 있던 이모 집 근처도 아닌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아직도 언니와 함께 녹번역에 도착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틀 동안 새터를 다녀와 지친 나를 위해 언니가 회기로 왔다. 가장 익숙한 사람을 가장 낯선 공간에서 보고 있다는 경험은 또 하나의 신기한 경험이 된다. 축 늘어진 나를 끌고 언니는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신환회를 위해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 몰려왔던 공포와는 또 다른 감정이 지하철을 타는 나를 따라왔다. 종로 3가에서 내려 3호선으로 환승한다. 녹번역 4번 출구,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른다. 지하철역에서 기숙사는 멀었다. 오후 2시 즈음되었을까. 언니와 나는 말없이 녹번을 걸었다. 계속해서 몰려오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새로운 감정들. 그리고 기숙사를 마주했을 때 드는 생각. 여기서 나는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사무실에 들어가 입사 등록을 한다. 언니와 함께 짐을 풀고 기숙사를 나선다. 기숙사 앞엔 구청과 보건소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엔 마트가 하나 있다. 그 마트에서 언니는 나를 위한 생필품들을 샀다. 휴지를 샀고 세제를 샀으며 컵라면을 샀다. 시리얼 먹을래? 내가 사줄게. 당시 언니의 나이는 스물셋. 그녀는 독일로의 교환학생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나는 당시 그녀의 스물셋을 넘어선 나이가 되었다. 스물셋의 그녀는 스물의 나를 걱정했다. 나 없어도 서울에서 잘 지내야 해. 내가 아는 가장 친숙한 사람이 이 도시에서 사라진다는 두려움은 생각보다도 더 빨리 나를 잠식하고 만다.  


    

 언니를 마중 보내기 위해 인천 국제공항에 갔다.

 언니, 빨리 돌아와야 해.


혼자 공항버스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나는 그렇게 서울에서 혼자가 된다. 고등학교에서 가장 마음을 줬던 친구와 룸메이트가 된 것은 그로부터 7개월 후. 그 7개월 동안 어떻게 나는 어떻게 녹번에서 살아갔던 걸까. 서울에서의 스무 살. 스무 살의 서울. 네가 생각했던, 기대했던, 꿈꿨던 서울이었니.           



 내 인생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N은 혜화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그땐 내가 혜화를 그렇게 사랑하게 될지도, 그곳에서 살게 될지도 몰랐다.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혜화에서 첫날밤을 묵는다. 고등학교에서 가장 마음을 주었던 D를 만나러 홍대에 간다. 이따금씩 이모를 만나러 답십리에 갔고 720번을 타고 한 시간 동안 졸면서 녹번으로 돌아왔다. 회기의 밤을 동기들과 휘청거리며 돌아다녔고, 이따금씩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런 날들은 대부분 회기,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숙취에 시달리는 날들이었다.      



 그날은 슬펐던 것만 같다. 수업을 끝마치고 녹번역 뒷길을 걸어오면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물이 나왔다. 엄마는 우는 이유를 물었고, 나는 기어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고야 만다. 엄마, 광주로 가고 싶어. 광주가 그리워요. 광주가.           



광주가 그리워요.


그렇게 그 주 주말에 바로 광주에 내려갔다. 광주는 똑같았다.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물, 스물 하나, 스물둘. 삼 년을 녹번에서 지냈다. 녹번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이모의 답십리에서도 살았고, 겨울 내내 광주로 내려갔던 적도 있고, 그냥 갑자기 제주도로 내려간 적이 있다.     



혜화라는 공간을 사랑하게 됐으며, 그 공간에서 살게 됐다. 일상으로 들어온 혜화는 또 다른 감정들을 들게 했고, 나는 그렇게 녹번을 떠났던 것처럼 혜화를 떠나고야 만다. 어느 공간에 살게 되는 순간, 그 공간은 사랑할 수 없는 공간이 된다. 그 공간은 낯설어만 진다. 내가 광주에 있을 때 광주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처럼, 혜화에서 살게 됐을 때 혜화를 떠나고 싶었던 것처럼.     



다음 나의 서울은 어떤 공간일까. 나는 그 공간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이전의 공간들을 그리워하게 되겠지.           



나의 서울. 나의 서울 상경 일기.     


지민.          



*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첫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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