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모메 식당>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밥 좀 먹고 다녀. 작년과 재작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아니, 그냥 어른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끼니를 거르는 나에게 쏟아지던 수많은 시선들. 2022년의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았았지만 자신 있게 말한다. 올해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 지민, 그리고 음식.
회기네 식당. 회기네 식당들. 나와 회기네 식당과의 연은 2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동기들과 함께 곳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다니곤 했던 1막, 코로나 이후 신문사에서 먹곤 했던 2막. 오늘은 그 1막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회기에선 주로 점심을 먹곤 했다. 아, 관용을 베풀어 마시는 것까지 식사로 쳐준다면 아침 역시 회기에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녹번에서 학교란 참 애매한 거리를 뜻한다. 지하철을 두 번 타고 마을버스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지각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무조건 20분씩은 일찍 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주로 1,2교시를 듣곤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은, 학교에 원하는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기숙사에서 6시 반안에는 일어나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잠이 별로 없다. 그래서 6시 정도에 도착한다. 뒤척이는 룸메를 위해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간다. 조심스레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는다. 그럼 어느새 시침은 7시를 향해 있다.
7시 반이 되면, 바빠진다. 출근길과 겹쳐 지하철이 만원일 시간이다. 그렇게 녹번역을 향해 뛰어간다. 검정치마와 잔나비의 노래들을 한 바퀴 돌리고 나면, 그렇게 회기역에 도착한다. 아, 도대체 회기의 아침 이야기는 언제 하느냐고? 이제 시작이다.
학교 정문 바로 옆엔 테이크아웃 카페가 있었다.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와 망고 요거트스무디를 주문하곤 했다. 화요일 아니면 목요일, 주로 전공 수업을 들을 때마다 그곳에 들렸다. 바로 이 카페에 들리기 위해 20분의 여유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카페엔 항상 줄이 있었다. 대부분 아메리카노를 시켰으며 아침부터 요거트스무디를 사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매일 쿠폰을 받았으며 한 번도 그 쿠폰을 채운 적이 없다. 그렇게 내 지갑엔 채우지 못한 카페의 쿠폰들이 가득해졌다.
음료를 들고 전공수업을 듣기 위해 언덕을 오른다. 언덕 위엔 우리의 단과대가 있다. 그렇게 건물에 도착하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벤티 사이즈의 컵은 안에 담긴 음료로 인해 자꾸만 차가운 땀을 흘린다. 4층, 강의실에 도착하면 동기들이 앞자리에 앉아 나를 맞이하곤 했다.
그렇게 1교시 혹은 2교시를 듣고 나면, 좋든 싫든 그다음 시간은 점심시간이 된다. 혼자 수업을 듣기 싫었던 나는 수정과 함께 시간표 맞추는 것을 즐겨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점심 메이트 역시 수정이었다. 물론 여러 동기들과 밥을 먹었다. 우리의 메뉴들은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회기 정문을 넘어서면 선택지는 우선 두 가지가 된다. 정문을 등지고 길은 왼쪽과 오른쪽 길로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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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의료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른쪽 길엔 보쌈집, 백반집, 국숫집이 있다. 거기서 길을 더 지나면 칵테일바와 맥주집들이 나온다. 수정의 글에도 나오는 국숫집은 우리에겐 유명한 곳이었다. 막거리 한 잔 걸치고 싶을 때, 비가 올 때, 과 선배와 밥약을 하고 싶을 때. 우린 항상 그곳을 갔다. 한 끼 식사에 배불리 먹고 싶을 땐 백반집을 갔다. 그땐 꼭 제육볶음 정식을 시켰다. 별 동아리 선배들과는 보쌈집을 갔다. 마늘보쌈을 시키면 라면이 같이 나왔다. 선배들이 사주는 밥을 먹으며 그렇게 자라났다.
돈이 좀 있을 땐, 칵테일을 마시러 갔다. 취하고 싶다며 무제한 칵테일 집을 갔으며 새로운 곳이 오픈했다고 맥주집을 갔다. 다른 학교 사람들과는 회기의 명물이라며 새로운 술집을 갔다. 맞다. 술집을 가는 데 별다른 이유는 없고 우리는 여러 술집을 갔다. 칵테일. 잘 모르면서도 갈 때마다 아는 척 새로운 칵테일을 시켰다. 어쩌면 같은 칵테일인데도 까먹고 또 시켰을 때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 칵테일을 마시고 좁은 계단들을 내려오고 나면, 또는 넓은 계단들을 올라오고 나면, 밤의 회기가 보였다. 밤의 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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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한, 아침을 자주 먹곤 했던 카페부터 시작되는 왼쪽 길엔 더 많은 식당들이 있다. 분식집, 마라탕 집, 카레집, 가츠동 집, 떡볶이집, 그리고 디저트로 먹곤 했던 아이스크림 집. 주머니가 가벼울 땐 꼭 분식집을 갔다. 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분식집은 곱빼기로 바꾸는 것이 무료인 곳이었다. 김밥과 치즈 라볶이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였으며 사람이 늘어나면 만두와 쫄면도 심심찮게 상에 올라왔다. 마라탕 집. 우리가 밥을 먹으러 다니던 시기엔 마라탕이 열풍인 때였다. 서로가 마라탕을 좋아하는 줄 알았던 우리는 매주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둘 다 마라탕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은 2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
마라탕과 분식이 조금은 질리기 시작했을 땐, 카레를 먹으러 갔다. 카레 다음엔 가츠동을 먹으러 갔으며 그다음 날은 냉면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좀 더 걸어보자 다짐한 채 길을 잃다 파스타 집에 들어섰다. 우리가 파스타를 먹는 날도 있다면서 킥킥 대곤 했다. 왼쪽 길에서 밥을 먹고 나면, 디저트는 꼭 아이스크림이 됐다. 회기의 명물인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우리는 쿠폰을 모으곤 했다. 물론 그 쿠폰 역시 한 번도 다 모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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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후문으로 갈 때도 종종 있다. 바로 옆 학교의 식당들을 탐방하러 가보자는 명목 하에 학교의 학식을 먹으러 들어갔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괜히 마음에 쓰여 눈치를 보이곤 했다.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유명했던 옆 학교의 학식은 딱 그 가격의 맛을 했다. 그래도 우리는 학식을 먹으며 웃었다. 이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들이 있었으니깐. 버블티, 밀크티, 아이스크림과 같은 것들이. 그것들과 함께 딸려오는 소소한 대화들이.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조그마한 기대들이.
코로나 이후 회기네 식당에서 직접 밥을 먹은 적은 거의 없다. 다른 이들과 회기에 들렸을 때 새로운 식당들을 갔다. 항상 갔던 곳이 아닌 다양한 종류의 식당들을. 소독제를 바르고 음식을 기다린다. 아직 마스크는 벗지 않았다. 음식이 나오고 맛을 본다. 그때,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왜.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수업이 끝나고 수정과 회기역을 가다 급히 학교로 돌아간 적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정의 변경에 둘 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을 마치고 다시 회기역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한 카페를 발견하게 됐다. 회기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그 곳은 폐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폐업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그 카페를 발견한 우리는 카페의 마지막 추억을 사 먹기로 한다.
그때 먹은 밀크티와 크레페.
그때 먹은 크레페를 잊을 수가 없다. 잊을 수 없는 것엔 크레페뿐만이 아니다.
난 아직도 입학 초에 먹었던 학식을, 동기들과 먹었던 회기네 식당들을, 수정과 먹었던 회기의 모든 음식들을 잊을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 음식들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들과의 시간을 함께 먹었기 때문이겠지. 각 음식마다 함께하는 우리의 추억들을. 그 시간은 다시 우리를 찾아와 그 음식들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거야. 그렇게 그때의 시간은 쌓이고 쌓여 지금 우리를 빚어낸다.
지민이 말하는, 회기네 식당.
*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네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