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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Jan 19. 2022

내 머릿속의 교양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

교양(敎養) :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대학에서의 강의는 두 부류로 나뉜다. '전공'과 '교양'

전공은 입학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라만, 교양은 제멋대로 원하는 것을 선택해 들을 수 있으니 전공 강의보다는 선택의 폭이 더 넓은 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인문, 과학, 예술, 체육 등의 다양한 선택지가 우리 앞에 주어졌을 때,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각자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선택을 해왔다. 우리는 각각 어떤 '교양'을 쌓으며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그 교양은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냈을까.

가장 먼저 얘기하고 싶은 과목은 필수 교양이었던 <글쓰기>다


1.   <글쓰기>


대학 1학년 때 수강했던 '글쓰기'는 좋은 친구들과의 연결고리이자 좋은 선생님과의 만남이었다. 해당 수업의 과제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조별로 00 활동을 한 뒤 그 소감을 적어오세요.' 그 활동은 '볼링 치기'도 가능했고, '점심 식사'도 가능했고, '한강 피크닉'도 가능했다. 조별로 함께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그래서 우리 조는 함께 점심 식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의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함께 갔던 오리고기 집. 각기 다른 과를 전공하고 있던 우리는 2시간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으로 밥을 같이 먹는 자리라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욱 컸던 것 같다. 비록 과제라는 명분으로 함께한 자리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몇 번의 식사자리를 더 가지고, 우리는 그 시간을 주제로 글을 써내려갔다. 누군가는 함께한 이야기에 대해 썼고, 누군가는 같이 먹은 식사 메뉴에 대해 썼고, 누군가는 우리의 전공에 대해 썼다. 함께한 시간은 같지만 모두 다르게 기록된 4개의 글. 수업 시간에 서로의 글을 돌려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시간의 퍼즐을 맞추었던 것 같다. 결국 글은 기억의 조각이니까.


이 수업은 나에게 이렇게 좋은 친구들 말고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해요?'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은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해 '000 작가님이요'라고, 답했다. 저명한 해외 작가 이름을 답했던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대답은 조금 눈에 띄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몇 주가 더 지났을까, 수업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교수님이 나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이번엔 단체 질문이 아니라, 1:1 개인 질문이었다. "작가님 사인본 받아줄까요?" 헉. 나는 대답 대신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다시 몇 주 뒤, 종강을 앞두고 나는 작가님의 사인본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 사인본은 나에게 감동 그 자체였다. 한동안 그 책을 가방 속에 고이 넣어두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펼쳐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그런 존재였다고나 할까. 이처럼 <글쓰기>는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교양 수업 중 하나이다. 대학이 익숙지 않았던 나에게 새로운 사람들과의 좋은 고리를 만들어주고, 대학은 이렇게 마음껏 사람을 만나고 자유롭게 어울리는 곳이라고 가르쳐주었던 교양 수업인 것이다.


2. <그리스 비극>


이 교양은 지민과 내가 함께 들었던 강의 중 하나이다. 그리스 신화에 대해 공부하고 발표하는 수업이었는데, 오전 9시 수업이라 꽤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꽤 먼 지역에서 통학을 하고 있었고 (왕복 4시간) 오전 9시 수업을 들으려면 오전 6시 반에는 출발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수업을 중간에 '드롭'하지 않고 끝까지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지민이 함께 듣는 수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도 꾸벅꾸벅 졸면서, 9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건 단지 그 이유뿐이었던 것 같다. 친구의 힘은 그렇게나 세다. 내가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은 때때로 친구가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수업에서 우리는 각종 그리스 신화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정작 기억나는  오이디푸스밖에 없는  같다)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웠고, 팀원들과 함께 조별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도 그러하였다. 각기 다른 과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같은 주제를 가지로 발표 준비를 하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흥미로웠고, 어려웠지만 뿌듯하고도 좋은 경험이었다. 대학 발표에 대해  자신감이 없던 나는, 그때  조원들을 만나서 조금이나마 발표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끌어주고, 채워주고, 설명해주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런 선배가 돼야지'하고 생각했던 것도 어느덧 3 . 이제 4학년이  나는 어느새  자리에 다다라 있다. 나는 그때  선배들처럼 좋은 사람이 되었을까? 자신은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아니오'라고 흔쾌히 대답하지도 못할 질문이다.


humánĭtas : 인간성, 인간의 본성


'교양 있는 사람이 되자' 이 말은 어쩌면 '인간적인 사람이 되자'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위해 4년 간의 교양 수업을 묵묵히 들어왔던 걸지도 모른다.


여러 과제를 통한 꾸준한 성찰과 반성이 그곳에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한 세계의 확장이 그곳에 있었다. 꾸준한 실패에도 다시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배웠고,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 교양 있는 사람, 인간적인 사람,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 이제는 내 머릿속에 떠도는 교양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배운 다양한 가르침을 가지고 묵묵히 걸어가 보자. 적어도 모든 순간에 내가 인간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지금의 나는 그렇게 바랄 뿐이다.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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