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은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대부분의 생명을 죽음으로 이끄는 더스트로 뒤덮인 지구와 더스트 종식 이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더스트 시대 인간은 돔을 건설하여 자신을 보호하는데, 돔 안과 밖을 분리함으로써 돔 밖의 사람들을 죽음에 내버려 둠과 동시에, 돔 안에서도 갈등과 폭력으로 암울한 상황을 이어간다. 이러한 돔 밖에서 희망을 찾는 유토피아도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프림빌리지라는 온실 아래 작은 마을로, 이 마을 사람들의 연대와 협력이 추후 모스바나라는 기제를 통해 전 지구에 희망을 심는다.
김초엽 작가는 《지구 끝의 온실》에서 한 명의 영웅(혹은 과학자)이 비현실적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혹은 과학자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어떤 확고한 신념에 따른 움직임보다는 사람들이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이 레이첼과 지수, 지수와 마을 사람들, 모스바나와 디스어셈블러의 관계 등을 통해 잘 나타난다.
한편, 많은 독자가 더스트로 인한 재난 상황을 코로나19에 빗대는데, 생사를 걸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홉스식 자연 상태가 떠오른다. 소설 속 재난 상황에서 이기적이고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생존해왔고, 따라서 종식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홉스식 자연 상태에서도 이기적인 인간이 더 잘 살아남았고, 지금의 우리를 그들의 후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소설 속의 협력과 연대가 분명 매우 지난한 일이었지만, 돔 안팎의 사람들에게 필수적이었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에게도 어렵지만 협력과 연대가 필요해 보인다.
《방금 떠나온 세계》는 <최후의 라이오니>, <마리의 춤>, <로라> 등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소설집이다. 전반적으로 받은 감상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사이보그가 되다》를 얹은 듯하다. 장애와 과학기술, 그리고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김초엽은 서로 다른 감각들을 이야기했는데,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 자체가 '각기 다른 인지적 세계'이다. 소설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감각과 인지들은 서로 충돌하고 절대 합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인지적 세계 사이에는 연결지점들이 존재하고, 어쩌면 우리가 그 연결을 무시하고 이해를 거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김초엽은 이 연결지점들을 미래의 다른 행성이나 공간 등을 배경으로 그려내지만, 장애를 향한 시선이나 보조기구 사용의 어려움 같은 인지적 세계 간 충돌지점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담아낸다.
다만, 내가 일곱 편 중 가장 인상깊게 읽은 소설 <오래된 협약>은 벨라타 행성의 오브라는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그리며 삶과 죽음의 관계를 말한다. 최근에 죽음이 쌓인 곳 위에 삶이 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기체의 죽음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사회적 지식이나 지혜를 쌓아올리는 것 아닌가. 삶이라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가치 있는 죽음으로 향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협약>이 정확히 이런 내용을 다루지는 않지만, 삶과 죽음 사이의 타협을 통한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비록, 장편소설은 단편소설에 비해 내용에서의 밀도가 낮은 느낌이 있으나, 김초엽은 다양한 관계와 감정들로 빈 공간들을 풍부하게 채워준다. 김초엽에 대한 평 중 '김초엽을 어떻게 이름도 김초엽인가'하는 평에 적극 공감한다. 이름마저 SF스러운 그의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이끈 미래가 좋은 세상일까'를 고민하게 만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