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믐 Dec 12. 2024

바다로 가는 강 (5)

단편소설



아버지는 현석이 돌아오자 핸들에서 손을 떼고는 운전석에서 내렸다. 뒷좌석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현석이 조수석 문을 열 때였다. 뒷좌석으로 올라탄 아버지가 번개탄을 집어 들다 말고 갑자기 한 손으로 가슴 한쪽을 움켜쥐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새파래졌다. 갑자기 온몸이 경직된 듯했다. 숨을 쉬기 어려운 것 같았다. 아버지는 식은땀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석은 아버지를 향해 어떠한 말이나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점점 고조되는 복부 통증을 아까부터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현석 역시 좌석에 미끄러지다시피 해서 주저앉았다. 둘은 죽은 듯이 숨을 죽였다. 현석과 아버지는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어느덧 저 멀리 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해거름이 지고 있었다.

  “그때나 짐이나 벼난 게 없노. 여를 내가 우얘 알아떠라.”

아버지는 차창으로 야영장과 그 주위를 보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현석은 알고 있었다. 가족끼리 처음 여행을 온 이곳이 인적이 드물고 물고기가 잘 잡히는 당신만이 알고 있는 장소였다는 것을. 여행을 갈 때 운전하고 있던 아버지는 그 사실을 현석에게 은근히 자랑삼아 말했다는 것을. 아버지는 손가락을 들어 저 멀리 흘러가는 강을 가리켰다.

  “근데 아까 휘 둘러받는데 저는 와 그래 더럽떤지. 냄새도 마이 나고 물꼬기도 막 주거가 떠다니더라. 니 기억나나. 저서 게 마이 자밨는데. 내가 마이 자바졌는데. 그때는 소라게도 마났는데. 물고기도 망코 소라고둥도 이꼬.”

현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말했다.

  “하긴 니는 어려 쓸 때라 기억 모하지 싶다.”

현석은 안다. 당시 아버지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머니가 어떤 표정으로 웃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자신이 모래사장에서 어떤 포즈로 함께 사진을 찍었는지를 다 기억한다.


현석은 문득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는 뭔가를 발견했는지 좀 더 가까이 창 쪽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갈대숲을 빠져나와 논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강이 보였다. 토사가 흘러내려 산사태를 방불케 하던, 죽은 물고기와 게가 떠다니던 흙탕물로 변해버린 아까 바로 그 강이었다. 강이 바다로 합쳐지는 접점지역을 쳐다보았다. 현석은 문득 그곳이 강인지 바다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게 확실히 구분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까의 강과는 분명히 달라 보였다. 토사가 흘러내려 무너지던 제방이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췄고 좁은 제방 안에서 잔잔하면서도 점점 세차게 일기 시작하는 물결은 마치 힘찬 파도의 그것과도 같았다. 강은 강으로 끝나지 않는 듯싶기도 했고 오히려 바다가 강줄기를 따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지금까지 착각해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현석은 저 강을, 강이 아닌, 아니 저곳을 바로 바다라고, 그냥 강이 아니라 바다로 믿자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어느새 수평선 너머로 거대한 해가 일렁이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 여운으로 노을 지는 바다는 초록빛과 형형색색의 붉은 빛깔로 물결쳤다. 현석은 살아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저 풍경을 아버지도 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바다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이었다. 여전히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고 현석은 그제야 아버지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알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