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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Dec 15. 2024

홀로 나누는 대화

에세이



마음이 통하는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 친하다고 생각되는 또래 친구들은 다 결혼을 해서 가족을 이루고 사느라 만남이 뜸하고, 직장 사람들하고는 가치관이 잘 맞지 않아 오히려 얘기를 하지 않은 편이 서로에게 편하다. 사실 나는 가족들하고도 별로 친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과는 남보다 더 못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들과 나는 서로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다. 안타깝게도 만나봤자 크게 득이 될 게 없는 인연들이다.


아무튼 긴 연휴 동안 거의 말을 안 해 본 것 같다. 그래서 딱 하루 근교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에는 60 ~ 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참 많았다. 희한하게도 젊은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여행지에서 계속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찍어주었다. 찍다 보니 결국 내 사진은 못 찍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에게 많이 고마워했다. 사진이 참 잘 나왔다고 계속 칭찬 일색이었다. 특히 혼자 여행 온 듯한 한 할머니가 거듭 고마워하며 너무 잘 나왔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았다. 원래 내가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기 전 어떤 연유로 무연고자 사망자 장례식장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돌아가신 분은 70대 할머니였다.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된 분이라 특정한 주거지가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떠돌며 사신듯 했다. 자신과 연고가 없는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투신했는데 경찰 쪽 보고서에는 엘리베이터 CCTV 확인 결과 자살 주저 흔적이 보인다는 의견이 나와 있었다. 옥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1층으로 내려와서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중간층으로 올라가 한동안 멈춰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결국 옥상까지 올라가 그런 선택을 하셨다. 그날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70살 넘은 노인이 그 쇠약한 몸을 이끌고 옥상까지 올라갈 때의 참담한 심정이 나로서는 도무지 가늠이 안될 만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내내 왜 그런 생각에 잠겼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모든 건물 옥상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대화를 할 수 있는 인력을 상시 배치해두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나의 경우 지금의 직장을 그만두고 당장 그리로 이직할 수도 있을 텐데. 어차피 나도 평소에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피차 서로에게 잘 된 일 아닌가. 대화를 통해 서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아보고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참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것 같다. 나의 빈약한 상상력은 여기까지고 내가 왜 작가로서 성공할 수 없었는지를 스스로 알게 해주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휴 내내 드문드문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가 혼자 있는 걸 염려해 선물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다. 아무튼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참 고맙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 누군가에게 크게 각인되는 인생을 살 생각은 없다. 계속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갈 것 같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되면 분명히 그에 비례하여 소외되는 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시선의 균형, 힘의 비대칭성을 온전히 맞추는 삶을 사는 게 나에게는 이제 중요한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분향을 위해 들고 있던 무연고자의 유골함에서 전해지던 그 따뜻한 온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온기가 왠지 모르게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그 온기를 잊지 않고 마음속에 다시 품으며 이 삶을 부단히 살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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