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저는 MBTI로 치면 전형적인 INTP형입니다 가끔 ISTP형이 될 때도 있어요.
INTP는 직관, 논리형의 사색가 스타일이고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관찰하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죠.
근데 단점이 있다면 바로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건데요.
저 역시 상호관계에 있어 정서적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적지 않게 들어왔습니다.
최근에는 나름 붙임성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띌 만큼 성격이 살가워진 정도는 아니지만요.
사람을 만날 때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크게 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성격이 후천적으로 형성된 결과인지 선천적으로 원래 그런 건지 아리송했는데 최근에는 선천적인 결과라고 판단 내렸습니다.
과거에서부터 저를 옭아매던 후천적 요소가 사라지면서 드러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지금껏 저와 맞지 않은 사람들이 준 영향이 제 좋지 않은 후천적 성격 형성에 큰 기여를 한 것 같아요.
이제는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되면서 본래의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20대에서 30대 초까지 애정결핍이 심했습니다. 금사빠 성향이었고 다혈질이었습니다.
늘 안 좋은 생각이나 감정, 기분에 우선적으로 휩싸여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한테 관심받고 인정받고 싶어 했고 절대 지지 않으려는 성격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우월해야 한다는 강박과 내가 무조건 옳다는 자존심 등, 이 모든 요소가 연쇄 고리로 이어지면서 남을 무시하는 태도로 전도되어 보였던 부분이 있습니다.
성격이 급진적이고 우발적이다 보니 자기 객관화도 잘 안 됐습니다.
늘 본인 생각 안에 함몰되어 있어요. 왜 사람들이 나를 안 좋아하는지, 기피하는 건지 이유를 몰라요. 시시때때로 자기만의 기분과 감정, 왜곡된 가치관의 조종을 받습니다. 나 자신은 그 세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의 행동이 상대방에겐 오히려 이 사람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었던 거예요.
그걸 몰랐던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기 어려워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때의 모습이 많이 상쇄된 상태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후천적인 부분이 사라지고 나서는 또다시 혼자 있는 게 좋습니다.
예전에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캐릭터 지안과 비슷했다면 지금은 영국드라마의 셜록과 성격이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말이죠. 셜록처럼 똑똑하거나 매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그 시크함과 냉랭함 정도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제가 다른 사람과 굳이 가까이하고 싶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결국 이래나 저래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고양이 성향 같다는 얘기를 종종 듣기도 하고요.
하지만 혼자가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거, 어떨 때는 한없이 평화로운 보상을 준다는 거, 오히려 혼자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않는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는 거.
처음엔 이 생각이 잘못된 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아예 안 만나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 소모임 같은 데 나가서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적절히 선을 지키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고립되는 것과 홀로 있는 건 다른 거니까요.
또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자기 독립심이 사라지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해결할 힘을 잃고 약해지는 기분, 어느 순간 제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받는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거죠.
그 문제에 정면으로 대면하며 원인을 찾고 대안을 모색해 가야 하는데 자꾸 상대방에게 말을 해서 환원시키거나 기대는 바람에 오히려 문제의 원인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의존하는 상대방에게 내 정신이 지배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까지 든 적이 있습니다.
그 상대방이 곁에서 사라지게 되면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을 겪은 적도 있고요.
관계의 과잉에서 오는 정서적 면역 상실에 걸렸다고나 할까요.
결과적으로는 저에겐 좋지 않았습니다.
제 심리적 만족을 위해 결국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서로의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조건 단절하자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자기 영역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심리적인 것이든 실제 물리적 공간이든 말이죠.
누구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 나조차도 쉽사리 무너뜨릴 수 없는 공간, 나를 굳건히 설 수 있게 지탱해 줄 수 있는 공간, 보이지 않지만 선명히 나를 포용해 주는 그런 공간의 구축이 결국 본인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가끔 홀로 있어 보는 것 고독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없는 주위를 둘러보며 그 텅 빈 여백 안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