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5코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인천 1호선 선학역으로 향합니다.
오후 12시인 2시간 후 선학역 3번 출구로 나와 서해랑길 95코스 시작점에서 문학산을 향해 오릅니다.
기온이 영하 2도를 웃도는 날씨에 제법 바람도 세지만 하늘은 벌써 봄이 온 것처럼 화창합니다.
오늘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있어 제 솔직한 속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언제부턴가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다시 그만큼 되돌려줘야 한다는 부채감 때문에 관계 맺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저만이 느끼는 강박일 수 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성격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 같이 있다 보면 상대방 얘기를 계속 들어줘야 하고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맞장구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잘못 됐다는 게 아니고 제가 좀 특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인에게 주기적으로 문자하고 전화를 하고 기념일 같은 걸 챙기기가 어렵습니다. 그게 어느새 의무가 되어버리는 거죠. 처음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습관만 남더라고요.
그 사람은 이 정도 해줬는데 나는 어느 정도로 다시 베풀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힐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딱 해준만큼만 받고, 받은 만큼만 되돌려 주는 것도 계산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고민 자체가 저에겐 짐이 됩니다.
족쇄가 채워진 것처럼 그 걱정들이 나를 옭아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관계들이 숨이 막혔던 것 같아요.
친해지면 선을 넘는 경우가 발생한 적도 있고, 순전히 자기 입장에 빠져서 나를 지적하고 가르치려 하고.
저는 상대방의 관점에 갇혀 살고 싶지 않았어요.
관계를 맺으면서 동반되는 이런 리스크들을 왜 감당하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는 크게 대화가 없긴 한데, 여러 사람이 함께 업무를 진행할 때 상대방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데서 오는 피로가 누적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나와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지?
시시각각 놀랍니다.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게 맞는데 급한 불을 끄려다 보면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닌 경우가 있잖아요.
각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다 보면 그 다양성이 다양한 독단으로 비쳐지기까지 하더라고요.
결국 감정 소모가 심해지고 지쳐서 말수가 줄어들게 됩니다.
언젠가 사무실에 잠시 혼자 있게 됐는데 오히려 심경이 좀 안정적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이렇게 불편할 거라면 억지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책이나 드라마, 종교에서 상대방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으로 관계를 이어가라고 하지만 공허하게 들리더라고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저한테는 그런 말들이 강요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런 당위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오히려 상대방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저는 흔히 주위에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수용하려고 합니다.
이건 저뿐만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사 표현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사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세상을 보면 사랑이라는 말이 넘치고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사랑해야만 한다고 채찍질하는 게 채찍질하는 사람들만의 또 다른 사랑 방식일까.
그런 사랑의 방식이 오히려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냥 좀 혼란스러워 보여요.
사랑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행복한 이가 크게 많지 않은 것 같아서요.
애초에 우리 사이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는 게 아닌가. 사랑이라는 말이 넘쳐날수록 그만큼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혼자 있는 게 나만의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
내가 괴롭지 않는 것.
내가 힘들지 않아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그제야 상대방을 품어줄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비로소 자리한다는 것.
하지만 요즘은 참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휴식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인천 차이나 타운을 끝으로 서해랑길 95코스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17킬로 정도 걸었고 4시간 반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번 코스는 자연 속을 걷기보다 도심 속 풍경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로 근처에 있는 인천역으로 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복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