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자락 숲길
남산자락숲길은 서울 상왕십리역 무악봉근린공원에서 시작해 응봉근린공원, 매봉산공원을 거쳐 반얀트리클럽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걷는 중간중간 한양도성길, 서울숲남산길과 중첩되는 구간이 있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상왕십리역 6번 출구로 나와 무악봉근린공원까지 올라 걷기를 시작합니다.
날씨가 대체로 흐려 하늘 전체가 우중충했습니다.
간혹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밝아지는 구역도 있었습니다.
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오아시스를 찾는 것 마냥 해가 비치는 곳을 골라 걸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어두운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라 밝은 곳을 찾으려는 제 조바심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합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저 멀리 항상 어렴풋이 빛나고 있는 희망을 따라 걸어왔는데 그 희망이라는 빛이 내가 만들어낸 착시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요즘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단조롭고 틀에 박힌 현재의 일상이 지금의 날씨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지나치면 간섭이 되고 모자라면 무관심으로 보일 수 있고 그 적정선을 지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제 입장에서 상대방을 평가하고 간섭을 한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 성격이 지고 싶지 않은 성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나 못지않게 드센 사람들과 만나 지내다 보니, 갈등 역시 끊이지 않았습니다.
불쾌한 감정이 밀려오면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폭주하는 감정 기류에 휩쓸리며 상대방에게 그대로 토해냈던 기억도 있습니다.
평소 사회적 제약과 유년 시절의 아픔에 억눌려 있던 심리적 압박이 예상치 못한 탈출로를 만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세차게 쏟아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인가 모든 관계와 단절된 채 혼자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돋보이고 싶었습니다. 상대방을 지적함으로써 내가 당신보다 옳다는 자긍심을 가지며 우월감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각되고 싶어 했지만 그 관심받고자 하는 욕구가 저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저만의 왜곡된 감정과 기분에 갇힌 채 여러 사람들과 관계하고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부모님이 저에게 새긴 상처를 다른 사람을 향해, 조금은 다르지만 그래도 유사한 방식으로 아로새기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에게 외면당한 제 삶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관심을 통해 회복시키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반짝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점점 더 고립되어 갔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각광을 받으며 주목받는 인물이 되고 싶어 하는 욕구는 결핍된 제 자아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한 결과일 테니 사실 이것은 내 본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제야 관계가 기존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억지로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집착한 게 아닌가. 자아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허영심에 몰아적으로 빠져 있던 게 아닐까.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저와 비슷한 점을 내비치며 여러 상대방에게 자기 동일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들은 거꾸로 다시 저에게로 돌아와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불편감은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또다시 상대방을 위해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뫼비우스 띠 같은 이런 관계의 반복에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관계 자체를 떠나는 선택을 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원래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 관계에서 벗어나고 보니 제가 몰랐던 본질적인 저의 성격을 자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고립과 고독은 다르다는 것과 충분히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안정감이었죠.
두려움을 정면으로 지각하고 외로움과 자연스레 대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제가 인지 못하는 제 관점에 갇힌 자기중심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 경험과 생각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또 세월이 흘러 성격과 성향이 다르게 바뀔 수도 있을 거고요.
이런 제가 이상하거나 특이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도 이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이 물음의 기저에는 남의 눈치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 기준이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현재로선 아무것도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무턱대고 집착하듯이 확신하는 것 역시 편향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까요.
누구나 본인이 지향하는 관계 맺는 방식이 다 다르고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 같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좀 더 이야기를 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건드리지 않거나 천재지변으로 생명이 다하지만 않는다면 그 수명이 영원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무도 나무들끼리 서로 대화를 할까요.
나무들은 이 평화가 지속되는 한 영원한 관계를 맺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생애를 끊임없이 살아가는 거겠죠.
나무들이 자기 영역을 지키며 스스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가까이 다가가 귀 기울여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반야트리클럽에 도착해 남산 자락숲길 걷기를 끝마쳤습니다.
뭔가 좀 아쉬워 이태원, 녹사평역을 거쳐 남산을 빙 둘러 넘었습니다. 그리고 명동역까지 계속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