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백운대
우이천에 눈이 아직 녹고 있지 않네요.
지금 지하철을 타고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려 우이천을 따라 백운대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출발한 지 50분 만에 들머리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을 시작한 지는 3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왜 계속 산을 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휴일에 할 게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할 게 없는 이유는 먼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누군가와 살갑게 주고받고가 잘 안됩니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때나 술 마시러 갈 때 동반되는 감정 소모도 지치고 이제는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굳이 함께 하지 않아도 혼자 있는 법을 터득한 거죠. 늘 혼자 다니다 보니 아무도 없는 환경에 익숙해지기도 한 거고요.
버거운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휴일 동안만이라도 누구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합니다.
예전의 지인들은 제가, 당신들의 마음속에 정해놓은 틀대로 변해가는 모습을 내심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즐기기도 했던 것 같고요. 본인의 바람대로 제가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고 착각에 빠졌던 거죠. 사실 저는 그들로 인해 위축되어진 심리를 가까스로 견디고 있을 따름이었는데요. 지인들은 그런 식의 관계 주도를 통해 어떤 성취감을 느낀 듯합니다.
사실 저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상대방의 입장에 자기 동일시화하여 간섭한 적이 적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역지사지가 되다 보니 간섭의 정도에 따라 그게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 직장에서의 업무 특성상 사람들의 요구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아무 통제를 받지 않는 혼자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낍니다.
이 고독의 정점은 드넓은 해변가를 혼자 거닐거나 험난한 산악지형을 독자적으로 오르다가 정상에 다다랐을 때 극대화됩니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광활한 산그리메 전망을 보며 길게 뻗은 능선을 걸을 때 느끼는 해방감도 빼놓을 수 없죠.
북한산우이역에서 출발한 지 2시간 경과 후 백운봉암문에 도착합니다.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많습니다.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하고 삼삼오오 짝지어 농담도 주고받습니다. 서로 친하다는 걸 물어보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양 자간의 각자 선을 지키며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반갑습니다.
제 주변인들은 본인의 의도대로 나를 바꾸길 바랐습니다.
저도 제 외부에 있는 뭔가를 변화시키고 싶을 때 떠올린 이미지에 따라 틀을 만들어 상대를 조건 짓는 행동을 했죠.
제 두뇌와 감정은 상상한 것이 현실화되는 순간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대로, 머릿속에서 그리는 대로 현실이 바뀌어진다면 만족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떠올린 상상을 현실로 실제화하려는 욕구를 자기 만족감으로 치환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저를 자기의 생각대로 바꾸고자 했던 제 주변인들도 마찬가지겠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살고 있는 사회도 결국 과거의 누군가가 상상한 개념을 바탕으로 이룩된 물리적 공간인 것 같아요.
결국 이 사회는 누군가의 상상력이 현실화한 공간, 그리고 저라는 개체는 그 누군가의 물리적으로 환원된 고도화된 사유 체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겠죠.
결국 저는 갇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갇혀 있는 것도 모른 채 갇혀 있는 거죠.
누구나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떠올리며 생각이라는 걸 합니다. 그 생각을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구현하려고 본능적으로 노력을 합니다. 현재 발 딛고 서 있는 이 복잡다단한 세계를 이룩한 과거의 그들도 생각의 연상작용을 현실에서 실제화하는 데 성공한 셈이죠.
저는 현재 미래에 존재하며 과거에 만들어진 그들의 세계관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에 갇히거나 반대로 누군가가 내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면 아무도 이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는 회의감이 빠져듭니다.
이 제한적인 세계에 갇혀 있다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고개 드는 보상심리로 부단히 산에 오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상에 올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이게 자유구나 싶습니다.
고독하게 서울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눈길을 끄네요.
한동안 바람을 맞고 앉아 있다가 백운대를 내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