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무의도
이번 연휴는 참 길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연차를 내면 더 길게 쉴 수 있었겠지만, 긴 연휴를 끝내고 돌아가면 산적해 있을 업무량이 부담스러웠어요.
업무 특성상 길게 휴가를 내지 못하는 게 늘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서 이번 임시공휴일 지정이 개인적으로 반갑긴 했습니다.
하지만 긴 연휴를 보낸 후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에 괜스레 불안감이 드는 건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에도 좀처럼 적응이 안 되네요.
막상 사무실에 도착해 출근부를 찍고 문서 폴더를 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업무를 시작하겠지만요.
여하튼 제 입장에선 지난 목요일이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목요일에 새벽 첫 차를 타고 인천공항 제1터미널역으로 향합니다.
다른 날과 달리 비교적 날씨가 화창할 거라는 예보가 있습니다. 비록 낮 기온은 영하권에 머물긴 하지만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저도 모르게 어떻게 하면 직장 생활에 그만 얽매이고 자유로이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거듭 되뇌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큰 탓이겠죠.
출근을 앞두고 느끼는 이런 불안은 항상 겪게 되는 고질병입니다.
한참 머리를 굴려보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형태로 나를 가두는 행위이지 않나, 나 스스로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의 자유를 포기하지는 말자 싶어 고개 들어 창밖을 봅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창밖은 깊은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마치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이른 새벽에도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시간에 첫 차를 타고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하며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다가 어느덧 인천공항 제1터미널역에 도착해서 내립니다.
개찰구에서 나와 곧장 3층의 7번 게이트로 향합니다.
게이트 밖을 나오니 아직 어스름이 다 가시지 않았네요.
운이 좋았습니다.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무의1마을버스가 와서 바로 탑승합니다.
15분 정도를 달려 무의도입구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여기서부터 바로 출발합니다.
인도를 따라 걷다가 오른쪽 방향으로 코너를 돕니다.
코너를 돌 때 바다 건너로 대무의도의 국사봉과 호룡곡산이 눈에 들어오네요.
국사봉과 호룡곡산으로 가려면 일단 저기 보이는 무의대교를 건너 대무의도로 넘어가야 합니다.
출발한 지 20분 만에 무의대교로 진입합니다.
대무의도로 진입했습니다. 무의대교 막바지에 다다라 국사봉 방향으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간혹 이렇게 나무 하나를 기점으로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을 만나는데요. 결국 나중에는 합쳐지면서 같은 방향으로 뻗어나가기에 어디로 발을 내디디든 상관없지만, 저는 늘 머뭇거립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이 발걸음을 순간 가로막는 거죠.
왜 이런 강박이 생겼을까 돌이켜 볼 때 어렸을 적 가족 집단에서부터, 학교, 직장에 이르기까지 늘 저한테 길을 제시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제시 방식이나 주입 형태가 다소 강압적이었어요.
제 상황보다는 당신들이 처한 상황의 관점에서 저를 통제하려 했던 것 같아요.
저를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반추해 보면 정말 그게 맞는지 의심이 들긴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 의지를 다른 사람을 통해 관철하려는 독단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입장에서는 다시 되돌리고 싶지 않은 시절이기도 하거든요.
그때 그분들은 자신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는 신념에 빠져 있던 게 아닐까, 그 신념이 자기 메타인지가 상실될 정도로 각자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지 않았나,라고도 조심스레 의심해 봅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의식을 자신의 생각으로 지배하는 데서 오는 쾌감에 빠졌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러한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그들이 남긴 상흔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심연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오래 지속된 그분들의 통제적인 방향 제시가 득이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실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들의 말이 무조건 정답인 것처럼 자기 최면을 걸다 보니 어느새 내 인생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생각대로 살고 있었던 거죠.
결과적으로 저라는 사람의 천성적인 기질과 특성들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펼쳐지는 삶의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 서서 기로에 서 있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지금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길 중간에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현재의 제 모습 같기도 하네요
어떻게든 제 자유의지로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산행만큼은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걸은 지 한 시간 반 만에 눈 덮인 넓은 공터를 만납니다.
그리고 곧 국사봉에 도착합니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쉬면서 구름 사이로 어렴풋이 나타난 해도 보고, 저 멀리 눈 덮인 호룡곡산의 산세도 바라봅니다.
다시 내려가 이번엔 호룡곡산으로 향합니다.
또 오르막이네요. 산행 내내 이러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됩니다.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호룡곡산과 가까워져 가네요.
이번엔 평지 길을 걸어갑니다.
다시 또 오르막 길입니다.
벤치가 나타나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벤치에 앉아 쉬다가 저 멀리 다리가 연결된 소무의도를 바라봅니다.
호룡곡산에 도착해, 전망대에서 하나개해수욕장 쪽을 바라봅니다.
이제 무렝게티로 가야 합니다. 호룡곡산에서 광명항 선착장 쪽으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다가 세 개의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한 곳을 지정해 걸어보지만 묘지로 가로막혀 있는 막다른 길입니다.
길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매다가 발견한 표식입니다.
길을 찾기 어려울 때 누군가 표식을 보고 스스로 방향을 찾을 수 있게 유도하는 방식이 좋네요.
외계행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해변을 건너 무렝게티로 향합니다.
무렝게티에 도착해 바닥에 퍼질러 앉아 웅장한 암벽산을 한동안 바라봅니다.
연휴라서 그런지 백패킹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 왔던 길로 한 시간 정도 되돌아가 광명항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저기 대무의도에서 소무의도로 건너가는 소무의인도교가 보이네요.
10분 정도 걸어 소무의인도교로 진입합니다
전방에 보이는 산은 안산입니다. 소무의인도교가 끝나는 지점에 바로 인접해 있습니다. 안산 정상에 오른 다음 몽여해변을 거치며 소무의도 전체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안산 정상에 있는 정자를 지나 곧장 내려갑니다.
몽여해변이 나타납니다.
몽여해변을 통과한 후 야트막한 산지형을 걷던 중 만난 닭입니다. 관상용 닭인 것 같은데 소무의도 주민이 풀어놓고 키우는 듯 보였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닭이 이렇게 예쁠 수 있나 싶습니다.
어느덧 소무의도를 다 돌았습니다. 다 도는데 1시간 정도 걸렸네요.
오늘은 걸으면서 참 다양한 길을 만났습니다. 만나는 길마다 특색이 있었고 비록 헤매긴 했지만, 그 길들을 제 방식대로 자유로이 지나고 넘었습니다.
현실에서도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 속박되지 않는 선에서 유연하게 자기 길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언젠가 꼭 이러한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겠습니다.
소무의도에서 나와 대무의도 광명항에서 무의1마을버스를 탑승합니다.
오늘 총 걸은 거리는 20킬로였습니다. 7시간 30분 걸렸네요. 총 상승고도가 1,000미터가 나왔는데 거의 등산 수준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40분 후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서울행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무사히 복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