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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자락길

배고팠던 새들과의 예기치 않았던 대화

by 그믐 Jan 27. 2025

보통 연휴는 혼자 보내는 편입니다. (평소에도 늘 혼자 지내는 편이긴 합니다만)


가만히 집에만 있지 않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다만 지방에 가는 걸 꺼려 하는 편인데요. 기차 예약도 힘들고 귀성길로 막히는 도로에 갇혀 있는 게 싫어서 되도록 서울 근교로 후딱 갔다 옵니다.


원래 오늘 북한산 백운대에 오를 계획이었는데 눈 예보가 있네요.


여러 기상 예보를 비교 분석해 봤습니다. 오랫동안 산행을 해왔고, 현재 일주일, 1등산을 하고 있는 등산러로서 입산해도 괜찮을 거라는 판단을 합니다.


더 안 좋은 기상 조건에서 소백산, 태백산 등반 경험이 있어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북한산 국립공원에 전화해 본 결과 아직 통제는 하지 않고 있으나 눈보라 때문에 산행이 힘들 수 있을 거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기상이 급변하면 입산통제될 수 있으니 이 점 유의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연휴에도 민원 응대를 하고 계신 북한산 국립공원 직원분께 일단 감사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집 밖을 내다봤습니다. 점점 눈발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등산 도중 위험 요인이 감지되면 바로 포기하고 내려올 거라는 다짐을 재차 한 후 기상 상황에 맞는 맞춤형 장비를 착용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려 백운대탐방지원센터를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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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국립공원에 전화한 지 1시간 반 만에 입산통제되었네요.

허탈한 마음이 들지만 안전을 위해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동안 안산 자락길을 대체지로 정합니다.

쌓인 눈으로 인해 바닥이 미끄러워 쉬운 산책길을 선택했습니다.


독립문역에 도착해 4번 출구로 나와 영천시장으로 먼저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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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 3개와 팥도너츠 2개를 사서 안산자락길 쪽으로 이동합니다. 참고로 이 도너츠 전부 해서 2,0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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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자락길 진입로에 도착합니다. 왼쪽 푯말 위로 눈으로 만든 작은 새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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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에 나뭇잎을 꽂은 모습이 앙증맞네요.


이제 열심히 걸어 올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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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눈발이 거세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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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렸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합니다. 저 멀리 안산 정상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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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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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발이 잦아듭니다.


곧 메타세콰이아길로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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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정도 지나서 광장같이 드넓은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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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쌓인 눈을 쓸고, 그 위에 장갑을 방석 삼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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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갑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습니다.


그리고 아까 영천시장에서 사온 꽈배기와 팥도너츠를 꺼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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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맛있게 먹습니다.


근데 이때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분명 새소리입니다. 그냥 소리가 아니라 울부짖는 소리입니다. 상당히 애처롭게 들립니다.

혹시 어미를 잃은 아기 새가 울고 있나 싶어 고개를 들어 나무 위쪽을 보았으나, 나무 키가 높아 제 쪽에서는 둥지 아랫면만 보일 뿐 그 내부 상황은 알 수 없었습니다.

신경을 끄고 다시 꽈배기로 입을 가져가려는 순간 애처로운 새소리가 또 들립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앞에서 문득 새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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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이 울고 있던 거군요.

자기도 꽈배기 좀 달라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기도 하고 눈도 많이 와서 먹이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꽈배기를 작게 뜯어 옆에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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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먹네요.


그걸 보고 까치도 날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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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도 꽈배기를 맛있게 먹습니다.


등산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고 있으면, 산 새들이 순식간에 먹고 있던 걸 낚아 채가는 순간도 있습니다. 내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먹을 거 내놓으라고 짹짹거리며 화내는 참새 녀석들도 있고요.

 

반면에 이 친구들은 그나마 대화라는 걸 할 줄 아네요. 인간의 입장에서 왠지 예의가 있어 보입니다.


아무튼 배고팠을 텐데 먹고 힘내서 자유롭게 날아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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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데크 중간에 우뚝 선 이 나무를 잠시 바라봤습니다. 왠지 시선을 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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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올라 마지막으로 인왕산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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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역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지하철을 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영천시장을 한 번 더 들렀습니다.

칼국수를 먹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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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짜리 칼국수입니다.

양도 꽤 되고 맛도 좋습니다.

제 경험상 가성비는 이 칼국수를 따라올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전에 왔었을 때도 싸다고 생각했는데 고물가 시대인 지금도 그대로네요. 아까 꽈배기 집도 그렇고 마진이 남는 게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마치 제가, 아까 드넓은 전망대에서 먹이를 주던 새가 된 기분이네요.

이제 새가 된 입장에서 감사하네요. 힘차게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앞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존재가 이 세계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는 날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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