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나 혼자 걷는 이유
제가 그 누구와도 같이 걷지 않는 건 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대화를 통해 투영되는 머릿속의 이미지에 빠져들거나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기분과 감정에 집중하느라 실제로 다양한 외부 자연 풍광을 시야에 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걸으면서 보게 되는 풍경을 통해, 사람과 대화하면서 생성되는 도파민과는 다른 결의 감성 자극이 이상하게 저를 흥분시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는 것도, 땅을 직접 발로 내디디면서 느끼는 촉감 이외에도 바람, 풀벌레 소리를 다양한 오감으로 실제 맞닥뜨리기 위해섭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고 느끼는 편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도 해봤고 차를 타고 다니기도 해봤지만 제 선택은 결과적으로 이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아날로그식으로 걷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5코스를 끝내고 10분가량 쉬다가 다시 6코스로 진입합니다.
나무데크를 따라 쇠소깍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올레길을 걸을 때면 제가 발걸음이 빠른 편이라 보통 앞선 분들을 추월해서 가는 편입니다.
차를 타고 스탬프 찍는 데만 골라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렇게까지 해서 완주 인증서를 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뭐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하고 가볍게 웃어넘깁니다.
어차피 반드시 걸어서만 통과해야 한다는 타이트한 규정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 자신만의 다양한 걷기 방식이 있는 거겠죠.
어느 누구한테는 차를 타고 걷는다는 개념이 생소할 수 있겠지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걸어갑니다.
하효쇠소깍해수욕장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립니다.
10분 정도 쉬다가 다시 일어나 걷습니다.
몇 년 전 패키지 투어 버스를 타고 여행 다닐 때 방문했던 바다 전망이 좋은 카페였는데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듯합니다.
사실 이 카페가 그때 그 카페인지 처음 지나갈 땐 알지 못했습니다. 근데 뭔가 낯이 익어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가 불현듯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알아차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카페의 위치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바로 이 위치에 있는 거구나, 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보통 누군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다니면 거기가 어디인지 방향감각이 둔해지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못하게 되는데 이렇게 걷다가 직접 마주치게 되는 게 신기했습니다.
다시 길을 향해 발을 내디딥니다.
어느덧 서귀포 시내로 진입합니다.
이중섭 거리를 지나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를 끝으로 제주올레 6코스를 완주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좀 아쉬워 서귀포칠십리시 공원과 삼매봉 공원을 올랐습니다.
서귀포칠십리시 공원에서 바라본 천지연 폭포입니다.
삼매봉 공원에 오르니 날이 금세 어두워졌고 더 늦기 전에 버스를 타고 얼른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 날 총 걸은 거리는 32킬로 정도 됐습니다.
제주도 걷기 여행 마지막 날이라 아쉽기도 했지만 또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 호텔에서 편히 잠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