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울 꿈의 숲
사방이 막혀 있는 삶이었습니다. 갇힌 삶이었고요.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집 밖을 잘 못 나가게 했습니다. 집 안에서 계속 감시를 했어요. 당일 새벽부터 그다음 날 새벽까지 초등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학업량을 정해 놓고 풀도록 시켰죠.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나쁜 짓이고 논다는 사실 자체를 죄악시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방식으로 저를 가뒀습니다.
평소 자세에 대해 통제를 많이 했습니다. 앉아 있을 때는 항상 아빠 다리를 하고 가슴 펴고 턱 끝을 당겨야 했습니다. 걷는 자세도 진중하고 무게가 있어야 했고 매사에 행동거지가 의젓해야 했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음식물이나 과자를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집안도 늘 깨끗하게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청소할 때의 자세, 밥 먹을 때 벌리는 입 모양이나 손 위치, 그리고 평소 표정과 눈빛 등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자주 훈계질 당하고 무작위 한 폭언에 노출됐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집을 나오고 나서는 경제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잠잘 곳을 마련할 수 있고 어딜 다닐 수 있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데 저에겐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었습니다. 삶의 여유가 없었고 늘 심신이 지쳐 있었습니다.
지금은 또 회사 내의 협소한 사무공간과 경직된 조직문화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부모님이 심어준 학대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40년간 일상의 관계 속에서 싸우고 울고 웃으며 토라지기도 하고 화를 내다가 다시금 미소 짓고 했던 저를 돌아봅니다.
이제 보니 세월이 지나며 남겨진 희로애락의 흔적들이 얼굴 표정 어딘가에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제 전반의 감정과 기분들이 상대방과의 관계에 의해서 생성되는 거라면,
그렇게 하루하루가 결정되는 거라면,
세상의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감옥이지 않나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 지구도 거대한 우주에 마련된 좁은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요즘은 40대가 되어 찾아오는 노쇠현상이 신체적 반응으로 바로 체감되고 있습니다.
장시간 가만히 앉아 있으면 혈압이 오르고 머리 쪽부터 멍해지면서 제대로 된 사고가 안 됩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쇠퇴해 가는 신체 메커니즘 안에 또한 갇힌 것이죠.
이렇게 사방에서 저를 옥죄오는 수많은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일까요?
휴일만 되면 지체 없이 산과 들 바다로 나가 시간을 보냅니다.
올레길, 둘레길, 산길, 바닷길을 자주 걷습니다.
발바닥이 지면에 직접 닿는 그 느낌이 좋습니다.
걷다 보면 그 촉감이 길마다 다르고 사방으로 보이는 자연 풍경 역시 다채롭습니다.
가지각색으로 다가오는 그 낯섦이 저를 설레게 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구름이나 하늘, 바다를 만들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 자연 자체가 참 신기해 보이기도 합니다. 비록 희소가치는 없지만 삶에 있어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죠.
무엇보다 공기, 물, 바람, 따뜻한 햇살이 저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이 자연에는 왠지 네 것 내 것이라는 개념이 없어 보입니다.
반면 나에게 많은 고통을 선사했던 이들은 늘 나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어 내길 바랐어요. 어떤 형태로든 나를 수단으로 삼아 본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했죠.
한 개인이 감당하기 벅찬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시종일관 자유를 빼앗기고 보잘것없는 제 소망조차 외면당해야 했죠.
누구나 손쉽게 누릴 수 있는 게 제한되다 보니 계속 결핍된 것을 갈구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방어적이고 호전적일 수밖에 없는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죠.
하지만 바람을 맞으며 확 트인 주위를 걸으면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낍니다.
수십 년간 예민하게 날이 섰던 감정들이 조각조각 바스러지며 흩날립니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이 듭니다.
저를 무겁게 짓누르던 두통도 어느새 완화되어 갑니다.
언제나 이렇게 계속 걸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