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수변누리길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답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떻게든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미래의 길이 있었고 먼 훗날에 걷고 있을 그 길을 머릿속에서 늘 상상해 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부모, 친구, 형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각자 모두가 다른 삶의 길을 걷고 있는 거죠.
그 길은 출발선이 다 다르고 길의 방향 역시 하나같이 가늠할 수 없는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발이 땅에 물리적으로 닿는 길과는 달리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각자가 더욱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다른 사람이 어떤 길을 가든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던 것 같고요.
본인의 길만 가다 보니 어느 순간 그 길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집니다. 그 길만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그 길이 정답이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합니다.
문득 누군가 다가와서는 내가 가는 길이 틀렸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를 대며 자신이 걸어온 길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걸어온 길을 이미 당신이 걸어봐서 다 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원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길에 나를 억지로 집어넣으려 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길이 마음에 든다고 고의적으로 그 길에 침범하여 자신의 길로 만들기도 합니다
또 각자 내 길을 믿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몰려가는 전혀 다른 길을 따라나서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길들이 분리되어 충돌하고 합쳐지면서 지금 현재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이 존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한편으로는 질서 정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수많은 길들이 부딪치고 엉키면서 형성된 하나의 총체인 듯 보입니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현재 위치에 저는 당도해 있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지금 서 있는, 걸어온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누군가가 강요한 길이었고 그 길들을 내 길로 착각하며 여태껏 걸어왔던 거였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부단히 내 길을 찾아봤지만 애초에 내 길이라는 게 있었나 싶습니다.
모든 길이 이미 다른 사람들이 걸어왔던 길이고 오래전부터 누군가가 만들어 왔던 길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개척한 길이라는 것도 다른 이가 앞서 개척한 길의 방식을 비슷하게 모방하는 것이거나, 결과적으로 다른 이의 길을 침범하기 위한 초석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틀림없이 맞다고 생각한 이 길이, 가만히 돌아보니 오히려 내 인생 전체를 숨 막힐 만큼 속박해 온 것이죠.
왜 길을 걷고 있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길 걷는 것을 잠시 멈춥니다. 숨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저 멀리 다른 사람들이 걸어온 길, 걸어가고 있는 길이 많이 보입니다.
내 좌우로도, 사방에도 수많은 길들이 어떤 방향으로든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길 속에 답이 있는 게 아니라 답을 찾으려는 나의 조바심이 길에 답이 있다는 상징성을 부여해 온 게 아닐까.
길이라는 게 예측할 수 없고 그 예측할 수 없음에서 오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결국 수많은 갈래의 길을 정답으로 착각하게 만든 게 아닐까
왜냐하면 내가 걸었던 어떠한 길에도 정답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의 불안이 길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단정 지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정답이 없다면 길을 걷는 것 자체도 결국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한참을 있으니 어느새 길이 다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믿기지 않게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들판이 사방에 펼쳐져 있습니다.
숨 가쁘게 걷던 사람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확 트인 주위를 둘러봅니다.
그리고는 하나 둘 바닥에 앉기 시작합니다.
다들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봅니다.
길을 더 이상 억지로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일까요.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집니다.
그래 그저 길은 길일뿐이니까.
이제야 조금이나마 홀가분해진 표정들이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