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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알게 되는 내가 모르던 나

영종도 둘레길

by 그믐


성인이 돼서는 어딘가를 여행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가까운 지방을 가더라도 막상 도착하면 미아가 된 기분이랄까요.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이 덜컥 겁이 났습니다.


괜히 이곳에 왔다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때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다급함에 사로잡혔습니다.



당초 여행의 방향성을 상실하고 헤매다 보니 금세 피곤해지고 그 고단함 또한 얼굴 표정으로 다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평소 어둡고 좁은 골방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몰래 집 밖을 나간 사실이 발각되면 어머니로부터 받는 그 대가는 엄청났습니다.


그 당시 무의식 안에 묻혀 있던 상흔이 쓰나미처럼 몰려온 걸까요.


굳이 없어도 될 죄책감이 마음속에 파고를 일으키며 저를 삼켜버리기라도 한 걸까요.


처음 올레길, 등산길을 걸을 때도 왜 그렇게 전투적으로, 도망치듯 빠르게 걸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쫓아와 어디로 데려갈 것도 아닌데 말이죠.


산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먼저 인사할라치면 갑자기 목소리가 잘 안 나옵니다. 본심과 다르게 그 순간만큼은 몸이 경직됩니다.


화창하고 맑은 날 역시 불편했습니다.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를 동경했습니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 보통의 일상을 무너뜨려 줄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날씨를 고대했습니다.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갇혀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던 인생 전체에 대한 보상심리로 돌아다니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두운 날씨와 아무도 찾지 않는 사각지대를 편하게 여기는 것도 당장의 처지와 공명된다고 느껴 속수무책으로 이끌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계속 걷다 보면 실타래같이 얽힌 길은 끊어지기도 하고 어느덧 다시 시작되기도 합니다.


힘든 코스를 오르다가 맞닥뜨린 갈림길에서 당황하기도 하지만 곧바로 올바른 방향을 찾습니다.


맨손으로 암벽을 짚고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들판의 풀냄새가 콧속을 채우며 들어옵니다


곤충 채집을 하고 개구리를 잡았던 어렸을 당시의 기억과 그 추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땅의 흙 내음도 맡아집니다.


그제야 잊고 있던 오감과 감각들이 제 위치를 찾아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잠시 서서 주위의 공기를 한껏 들이켭니다.


멀리 있을 땐 몰랐던 것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여태껏 상상한 적이 없는 것이기에, 머릿속에 그려 본 적 없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데서 오는 낯선 쾌감이 저를 들뜨게 합니다.


화창한 하늘과 녹색의 수풀림을 보면서 내가 이런 감정과 기분을 갖는구나, 내 마음이 이럴 땐 이렇게 반응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항상 머릿속에 가야 할 미래를 그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나’는 내가 원하는 나라기보다는 주위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그 누군가들이 원하는 나였습니다.


나는 항상 누군가의 대리인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제야 지금까지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심리적 감옥 안에 제 스스로 찾아들어가 갇혀 있던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 온 사회가 바라는 나를 향해 정성껏 복무해 왔음을 인지합니다.


하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 어디로든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이 가르치는 일관된 질서에 속박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여태껏 이런 나를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저 햇살을 맞으며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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