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불곡산
저를 잠식한 기나긴 아픔은, 저를 괴롭혔던 많은 이들이 저의 내면을 자신들의 생각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로 인해 발생한 불행이었다고 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결심 아래 살아왔습니다,
부모와 학교 선생님, 힘이 센 학우들에게 폭행을 당했던 일상들이 인생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들이 악의적으로 취한 언행들이 제 도발적 성격과 불필요한 방어심리 형성에 큰 이바지를 한 것이죠.
가까운 주위 사람들이 조성한 부조리한 일상의 일들을 겪으면서 사회성은 점차 없어졌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조차 어색하고 서툴렀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일반적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게 되면 저의 딱딱하고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직설적인 언행들이 원인이 되어 금세 서먹해졌습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걸거나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았죠.
반복되는 관계 단절이 힘들었습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과거에서부터 하나의 문화처럼 이어진 사회에 만연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으로 저와 같은 사례가 발생한 거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아주 단순하고 일방적인 생각이었죠.
강자와 약자의 위계 구도가 사회 배경 또는 개인과 집단 간의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서로 다른 경제적 위치에서 만들어진 상이한 관점에 의해 의도치 않게 충돌한다는 사실을 자각 못했던 거죠.
하지만 저는 제가 처한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관점 안에 이미 자기 상대화가 안될 정도로 농밀이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제가 당면한 여러 단일한 사건의 배후에 어떤 복잡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상호작용했는지 구조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거죠.
부모의 폭력도, 학우들의 폭력에서 선생님의 폭력, 직장 상사의 갑질에 이르기까지 단순 힘의 논리에 의해 벌어지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일방적 괴롭힘이 인생을 좀먹어왔다고 판단한 거죠.
강자에게 지배받는 이 현실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힘의 논리만이 팽배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오로지 힘의 우위를 척도로 삼아 함부로 취급하면 안 된다는 기치 아래 삶의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삶을 억압하는 사회에 만연한 조직화된 권력체계와 각자의 내면에 뿌리내린 권위주의의 실제적 와해, 이 모든 것들을 타파해야 한다는 개인적 분노의 감정이 우선시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단순히 머릿속을 지배한 이분법적 신념 안에 갇혀 교조적으로 변해갔던 거죠.
내가 이토록 강자를 향해 반항적이면서 거칠게 맞서는 건 나와 유사한 피해를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고도 나름 합리화했습니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보이거나 또는 보이지 않게 은폐되어 있는 억압적인 힘의 징후를 찾아내 저항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처한 환경 내에서 소신껏 목소리 높이고 때론 강세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저의 적극적 언행이 약육강식의 논리로 가득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세상을 바꾸는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영웅심리에 도취라도 되어 있던 걸까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저의 신념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인지능력을 상실시킨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저와 같이 강자의 권위와 억압적 위계 구도를 싫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한 신념 안에 매몰되어 있던 거죠.
저는 수많은 주위 사람들에게 제 입장을 강요했고 제 논리로 그들의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되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순전히 제 경험에 의한 제 입장에만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갈수록 일방적이 되었고 사고방식은 앞뒤 인과관계 고려 없이 사회적 강자는 무조건 나쁘다는 확증편향적 양상으로 변해갔습니다.
제가 비판해 온 억압적 힘의 논리를 정작 또 다른 형태로 제가 다른 사람을 향해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단순 정의를 지킨다는 저의 신념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행동 자체가 폭력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그러니까 저의 거친 언사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단정적 행동들이 오히려 애꿎은 주위 사람들까지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가두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제가 앞서 거칠게 저항하고 비판했던 이들과 다름없이 자기중심적 정신 상태에 잠식되어 있던 거죠.
자기 객관화가 안될 정도로 자기신념에 함몰되다 보니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고통받는 입장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제가 옳다는 관점만을 관철했고 제 의견을 따르지 않거나, 다른 합리적인 시각으로 반박 의사를 제시하기라도 하면 그 상대방을 색안경을 낀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된다고 하면서 내 일방적 주관으로 상정한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 모순이 수없이 발생했습니다.
어느 순간 감히 그들이 나의 권위에 도전한다고까지 느껴졌습니다.
나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던 그들의 권위적인 태도를 정작 당사자인 내가 여지없이 닮아 갔던 거죠.
저는 단지 그들과 명분만 다를 뿐,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로 또다시 그들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정의가 아니라 정의라는 독단적인 신념 안에 갇힌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자기 확신, 자기 관념에 함몰되면서 발생할 가장 핵심적 요인을 간과해 버렸습니다.
저조차 제 부모들처럼 타자의 시선에서 보이는 ‘나’라는 인간의 객관적인 모습을 망각해 버린, 자기모순에 빠지는 위험을 말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자기 신념과 관념에 함몰된 채로 저와 유사한 상황에 빠져 있을지 모르죠.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러한 자기모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