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단조 Jul 29. 2016

눈이 없어졌어요

네 살, 마주이야기 #3

로션을 무척 사랑하던 네 살 아이는 로션만 보이면 한 통씩 해먹는 통에

나는 로션을 꽁꽁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두었다.

그런데 어느날, 욕실에서 물장난을 허락받은 아이는

엄마가 잠시 방심한 사이, 바디로션 하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마침 엄마도 잠시 안보이겠다,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로션을 온 얼굴에 치덕치덕 발라대고 있던 아이.


한참 행복한 로션놀이에 빠져 있던 아이 앞에 엄마가 나타나자 

아이는 생존애교를 발사하며 말했다.


"엄마, 포도 이놈하지 마세요."


로션을 잔뜩 바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그런데다 놀이를 방해하지 말라는 듯, 뻔뻔하게 이놈하지 말라는 말이 웃겨서,

혼내야 하는 엄마의 임무를 잠시 망각하고, 크득크득 아이 몰래 뒤를 돌아 웃었다.

이놈- 웃음을 참아가며 엄마의 본분인 혼을 내고, 얼굴을 닦아주었다.


얼굴을 대충 닦고 나자, 아이는 두리번거리더니

"엄마, 로션이 없어졌어요."  한다.


로션이 어디갔을까~~ 하며 함께 두리번거렸더니

아이는 눈을 꿈뻑꿈뻑 거리더니 다시 말한다.

"엄마, 눈이 없어졌어요."


로션이 들어가 눈앞이 뿌옇게 잘 안보이는 상황에서 '안보인다'고 말할 줄을 몰라,

'로션이 없어졌다.', '눈이 없어졌다.'라고 말한 아이의 표현력에

온 가족이 빵 터져 한참을 웃었다.


"어이쿠. 눈이 없어지면 큰일나는데. 어떡하지?" 하면서 눈가의 로션을 닦아주자

비로소 안심하며 하는 말.

"이제 눈이 안없어졌어요." 


g단조


매거진의 이전글 네 살의 자아정체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