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단조 Aug 09. 2016

아이의 잔소리

네 살, 마주이야기

세상의 규칙을 배우는 나이.

규칙의 변주나 융통성을 받아들이기엔 이른 나이. 세 살.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되는 것을 배우는 때인지라

아이에게 안된다고 한 건, 나도 아이 앞에서 하지 않는 것이 불문률이 되었다.


"포도야, 면봉으로 귀 닦는건 어른되면 할 수 있는거야. 포도는 어린이라서 아직 안돼."

"포도도 유치원가면 로션 혼자 바르게 해줄게. 지금은 엄마가 짜주는 것만 바르는거야."

"밥 먹을땐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예쁘게 앉아서 먹는거야."

등등... 

아이에게 할 잔소리는 늘어만 가고,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 했던가.

아이도 엄마에게 잔소리를 한다.


"엄마, 텔레비젼 가까이서 보면 안돼. 뒤로 와서 보는거잖아."

"엄마, 차에서 똑바로 앉아. 핸드폰 하지 말고."

"엄마, 밥먹을 때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엄마, 밥 흘리면 안돼. 조심해서 먹어."  

"엄마, 간식은 밥먹고 딱 하나만 먹는거야. 하나만." 

그렇게 가끔은, 엄마 체면이 말이 아닐 때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포도랑 밖에 나가려고 외출복을 입으려는데 아이가 옷장에서 옷을 싹 다 끄집어 낸다.  

"포도야 그렇게 꺼내면 안돼~~~!!! 옷 정리하자. 다시 차곡차곡 집어넣어봐."

"포도가 옷 고를거야. 이거 입을까? 저거 입을까? @#*()@$!....." 


빨리 나가야는 하고, 정신은 없고.... 

원래는 아이가 어지럽힌 건 아이 스스로 치우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후다닥 치우는데 

아이가 가재미 눈을 하고 나에게 말한다.

 

"엄마!! 포도가 치우려고 하잖아. 쯧!!!" 


혼낼때 혀를 쯧 하고 차는걸 나에게 배워, 가끔씩 이렇게 나에게 혀를 차는데 어찌나 우스운지. 

평소라면 "그렇게 말하면 안돼. 이쁘게 말해." 라고 했겠지만 이번만은 나도 장난끼가 발동했다.

 

"쯧! 엄마가 치울래."

"쯧!" 

"쯧" 

"쯧!"

"쯧"  


둘이서 쯧. 쯧. 혀차기가 몇번 오고갔다. 

가재미눈하고 혀를 차던 아이는 약이 오르고 답답했는지 뭔가 말하려 한다.  

"엄마. 엄... 엄마...엄마. 엄마..." (할 말이 퍼뜩 떠오르지 않으면 엄마를 여러번 막 반복하면서 할 말을 생각하는 때가 많은 아이. 아마도 "엄마,하지마!!" 하고 말할거라고 짐작했는데.....)


"엄마, 쯧 하는거 그거 어디서 배웠또????"


아이가 뭘 잘못했을 때, 입버릇처럼 "그거 어디서 배웠어?" 라고 꾸짖곤 했는데,

요녀석, 엄마 장난에 약도 오르고 화가 나 엄마를 꾸짖고 싶었는지

내가 하던 말을 기억했다 적절하게 써먹었다.

이 말을 기억해내느라 힘들었던건지, 혹은 한참 공들여 생각해내느라 화내는 걸 잊었는지

무척이나 순진하고, 호기심 강한 눈빛으로 착하게, 

어디서 배웠는지 물어보던 딸.


애 앞에선 물도 함부로 마시면 안된다더니,

엄마가 하는 말을 자기만의 데이터베이스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적절한 상황에서 꺼내쓰는 아이의 언어능력에 당황스러울 때도 많지만, 배꼽잡을 때도 많다.


어른한텐 쯧.하는거 아니라고 혼내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는데

엄마가 빵 터져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다 넘어가는 일이 되어버렸던 그 날.


그 날, 혼내지 않았어도

아이는 이후 4년간 단 한 번도 '쯧' 하는 일이 없었고

'그거 어디서 배웠냐'고 하는 일도 없었으니

우리 사는 세상의 규범을 굳이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는 일인가보다.



g단조

매거진의 이전글 눈이 없어졌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