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7개월에 교통사고가 난 후 요가학원에 가지 못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쭈욱. 그렇게 오랫동안 못 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막연히 나에게도 어떤 시간이 있어서 요가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루에 딱 두 시간만 여유가 생기면 갈 수 있는 집 앞 학원이었다.
아이의 소아과가 있는 곳이라서 병원을 가는 길에 항상 이 건물에 갔었다. 하지만 6층에 있는 요가학원을 멀찌감치 쳐다봤을 뿐. 발걸음을 돌려 소아과 진료 차트에 아이 이름을 적었다. 그래, 아직 거기 있구나. 내가 언젠가 곧 갈 수 있겠지 하면서.
2022년 12월.
딸랑. 오늘 그곳에 종을 울리며 들어선다.
"미진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기는 많이 컸죠?"
같은 아파트 주민이기도 한 원장님의 든든한 남편분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해 주셨다. 마트에서 한번, 주차장에서 한번, 공원에서 한번 마주쳤을 뿐인데 나를 알아봐 주시다니 반가울 따름이다. 이제는 요가원 식구가 되신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잠시만요. 수업이 끝나면 매트를 찾아드릴게요."
갑작스럽게 요가를 그만두면서 새로 산 연분홍빛 매트를 요가학원에 그대로 두고 왔다. 무려 2년 동안 요가학원에서는 나의 매트를 보관해주셨다. 매트를 집으로 가져오지 않은 건 내가 다시 돌아갈 것을 스스로 약속하기 위함이었다.
같은 시기에 샀던 남색의 요가매트는 집에서 구르고 닳아서 이미 오래전에 지저분해졌다. 한동안은 요가매트의 본분을 잊고 아이 방에서 발 망치 방지용으로 깔려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요가원에 보관되어 있던 분홍색 매트를 펼쳐보니 여전히 새로 산 고무 냄새가 살짝 났다. 2년이나 지났는데 여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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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발란한 요가 선생님은 기억 속의 긴 머리를 중간 단발로 산뜻하게 자르셨다. 요가 수업 시간표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같은 분이셨다. 그래서 더 고향 같았달까. 나는 수줍게 웃으면서 지난 안부를 물었다.
"어머, 너무 오랜만이에요. 벌써 2년이나 흘렀어요?"
"네! 애기가 말도 하고 뛰어다녀요."
집에서 동영상으로 요가 수업을 들으면서 수없이 상상했었다. 지금 그 선생님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예전처럼 겨울이면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고 계실까. 그 양말 정말 예뻤는데.
눈에 익었던 회원들은 거의 없었고 매트 위에는 처음 보는 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가장 익숙했던 공간, 그리고 이제는 약간 낯설어진 공간에서 발을 쭉 뻗고 허리를 숙여본다.
돌아가는 그날이 오겠지. 오겠지. 생각은 했지만 진짜로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 육아는 마치 끝도 없는 터널 같아서 100일까지 버티는 일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100일의 기적은 언제 오는 건데. 화가 나기도 했다.
이제 다 지났구나. 나의 삶을 조금은 되찾았구나. 핏덩이로 세상에 나온 아기는 스스로 걷고 말을 하는구나.
소중한 요가 매트를 보관해 준 요가 학원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수업을 듣고는 너무 좋았다고 혼자 웃으며 딸랑. 문을 열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