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볼 때는 어떤 운동도 하지 않았다. 운동은 사치라고 생각했지 뭔가. 이제 대학교 4학년 임용고시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임고를 볼 때도 요가를 그만두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가를 하다 보면 스탠딩 자세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 발로 균형 잡는 자세들이 꽤 있다. 처음에는 한 발을 뗀다는 자체가 정말 새로웠다. 내가 홍학이 된 기분이랄까. 나무자세에서 한 발로 꼿꼿이 서서 두 손을 모았을 때 흔들리고 휘청거리는 나의 모습이 거울로 보였다.
발바닥이 양쪽이 다르다는 것도 그때 처음 느꼈다. 오른발로는 그래도 탄탄하게 설 수 있는 반면 왼발로는 도무지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발바닥이 약간 기울어져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들여야 왼발로 겨우 균형이 잡혔다.
그래도 한 발 서기를 하면 할수록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 그리고 임고 공부를 하면서부터는 여기에 딴생각이 더해졌다.
이 자세에서 끝까지 버티면 임고에 붙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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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벽면이나 나를 비추고 있는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쭉뻗은 손이 덜덜 떨리고 발끝이 휘청거려도 끝까지 버티게 해 준 건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사바아사나를 할 때도 '임고에 꼭 붙게 해 주세요.' 기도부터 하고 잠들었다. 그때는 시험이 참으로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었다. 재수를 하게 되면 멀쩡한 시간 1년을 날리는 것은 물론 그 사이에 내가 벌 수 있는 초봉을 2000만 원을 날리는 것으로 생각됐다.
임용고시를 보러 가기 2주 전까지도 요가를 다녔다. 마지막 2주 동안은 스트레스성 위염 장염에 시달리며 죽만 먹고 공부를 했다. 사실 그전까지 괜찮았었는데 큰 고모가 시험 보러 가기 전에 한우 구이를 사주신 덕분에 기름진 고기를 먹고 탈이 나고 말았다.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점심을 시험보는 교실에서 먹게 되어 있는데 병이 나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작은 용기에 담긴 양반 죽을 먹었다.
그래서 임고는 어떻게 됐냐고. 한방에 붙었다. 그리고 3월 1일 자로 바로 발령이 났다.
발령지는 경기도 양평. 나는 양평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양평은 강원도와 경기도 사이에 있다. 얼마나 땅이 넓은지 원주 - 양평 - 남양주 - 서울 이렇게 연결된다고 보면 된다. 양평에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전철'이 들어와 있기는 했다. '경의중앙선'이라고.
하지만 시골 탈출을 바라며 경기도로 임고를 봤던 내게 양평은 또 하나의 강원도였고 내가 발령받은 학교는 한 학년이 한 반밖에 없는 또 다른 나의 모교 같은 학교였다.
2월에 발령난 학교를 찾아갔을 때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이 낯선 땅에서 살 수 있을까. 학교 근처는 너무 외진 시골이라서 나름 전철이 연결되어 있는 용문역 앞에 방을 구했다. 그리고 양평에서 요가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