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다니던 초반에는 혼자 요가원에 가는 게 어색해서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곤 했다. 내가 다니던 요가학원은 회원수도 많았고 수업도 월화수목금 오전 오후 저녁까지 꽉꽉 차 있었다. 알록달록한 요가학원 시간표를 보면서 오늘은 무슨 수업을 듣지. 알사탕을 하나씩 빼먹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표만 봐서는 그 수업이 어떤지 알 길이 없었다. 무작정 한번 수업을 들어보고 너무 힘들다 싶으면 다른 수업을 듣는 식이었다. 선생님들도 얼마나 다양한지 나타샤라는 외국인도 선생님도 한분 계셨다.
그러던 중에 같이 요가를 다니던 친구가 '이 선생님 수업은 꼭 들어봐야 해!'하고 추천을 해 주었다.
그 선생님이 바로 '청연'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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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 선생님은 당시 스물한 살이던 내가 처음으로 반해버린 요가 선생님이다. 수업에 들어가니 짧은 커트머리에 나이 지긋하신 분이 앉아 계셨다. 아무리 요가 선생님들이 동안이라고는 해도 50은 되어 보이셨다. 나는 젊고 활기찬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을 주로 들었기에 궁금증 반 호기심 반으로 매트에 앉았다.
선생님은 나긋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수업에 들어가서 차근히 요가 동작들을 해 냈다. 수업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수업을 관통하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선생님은 인사를 할 때면 마치 기도를 하듯이 손을 모았다. 얼굴에는 어떤 근심 걱정도 없을 것 같은 인자한 미소가 있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면 내 마음도 조금 따뜻해졌던 것 같다.
Photo by Leslie Donaghy on Unsplash 숩타비라아사나 / 비라아사나는 같은 다리 모양으로 앉은 자세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젊은 시절부터 요가 강사를 한 건 아니라고 했다. 이제 햇수로 요가를 한지는 5년 정도, 강사가 된 것은 그보다 적은 시간이라고 쑥스러운 듯이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비라아사나' 자세를 할 때면 엉덩이에 수건을 받치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해도 이 자세는 잘 안돼요."
당시의 왕왕왕초보였던 나는 당연히 그런 고난도 자세는 되지 않았기에 엉덩이에 높다란 블록을 깔고 앉아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말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이제는 안다. 요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 자세는 잘 안돼요.'라는 말을 꺼냈을 때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걸.
청연 선생님은 평소처럼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분이셨다.
청연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고모를 통해 들은 말로는 그분에게는 무용을 전공하는 대학생의 딸이 있다고 한다. 수업 중에도 대학생인 우리를 보면서 딸 이야기를 몇 번 하셨던 적이 있다. 고모는 거기에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런데 그 딸이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 남편 딸 이래. 정말 대단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라면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니어도 진심으로 그 딸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분의 목소리와 웃음이 그리고 잔잔했던 미소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선생님이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도 그런 미소를 짓고 계시지 않았을까.
요가 선생님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지만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곳을 떠나면서 더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진짜 성함이 무엇인지, 아직도 요가를 하시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나는 그래도 요가의 시작을 생각하면 청연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나이도 많이 드셨겠지. 여전히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행복하시기를 글을 통해 잠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