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이 없는 삶으로
제주에 온 지 열흘이 되었다.
이사는 거친 물살을 거슬러 가는 것만 같았다. 그대로 있으면 될 것을 모든 짐을 챙겨서 차로, 배로, 비행기로 남쪽 끝까지 내려왔다. 과정은 고단했지만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니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
어제는 동동이와 함께 하루 종일 밖에 있었다.
오전에는 곶자왈 산책을 갔고, 김밥과 떡볶이를 사서 사계 해변에 가서 먹었다. 딱히 스케줄도 없어서 모래놀이를 하고 싶다는 아이가 지쳐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오늘은 3월 1일이다.
선생님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새 학기 준비로 가장 바빴을 시간이다. 개학을 앞두고 새로 맡게 될 아이들 명단도 받았을 것이다. 3월은 떨리기도 하지만 학교의 한 해 중 가장 바쁜 때이기도 하다.
학교에서의 삶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것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엉덩이가 침대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동동이에게 두유 한팩을 먹이고 억지로 옷을 입혀서 차에 태웠다. 지각으로 하루를 시작했으니 어찌 행복했겠는가.
'그래도 난 학교에 가잖아. 옆반 선생님은 병가를 쓰고 두 달째 안 나오고 있지만, 나는 오늘도 씩씩하게 출근을 하잖아.'
지각을 하면 교실에 먼저 와 있는 아이들은 시끌벅적해서 분위기를 잡기가 힘들었다. 잘만 지나가면 4시간, 5시간은 금방이지만 문제는 오늘 어떤 '사건'이 벌어지느냐다.
누가 누구와 싸운다거나, 갑자기 드러누워버린다면 10분이 흐르는 것도 기나긴 시간이 되고 만다. 거기에 교사인 내가 버럭 소리라도 지르면 교실은 얼어붙고 나는 죄책감에 빠진다. 돌이킬 수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수업을 해봐야지.
아이들이 가고 나면 후루룩 청소하고 업무를 해야 했다. 언제까지, 무엇을 제출해 달라는 쪽지는 컴퓨터에 쌓여가는데 그 쪽지들을 포스트잇에 옮겨 쓰다가도 한 두 개는 놓치고 말았다. 회의에 와달라는 쪽지를 잊어서 가지 못한 적도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엉망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연차가 적은 선생님들도 업무며 청소며 수업까지 척척해내는데 왜 나는 부장을 달고도 실수투성이일까.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시 어린이집으로 동동이를 데리러 갔다. 함께 손을 잡고 차를 타러 가는 잠깐의 순간은 행복했던 것 같다.
괜찮다고 생각하려 노력했었는데, 바꿀 수 없는 건 그것이 '노력'이라는 것이다. 아무래 애를 써도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었다. 그냥 다 놓아버렸다. 모두 다.
여기에서는 일어나야 할 시간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다. 지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딜 가야 하는 것도 없다.
그냥 이곳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기에서 저기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이렇게나 행복할 일이라니.
이제 와서 뒤를 돌아보면 나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힘들게 걸어가면서 '왜 이렇게 힘들지?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 보이는데?' 묻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말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내가 힘들었다는 것이고,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아무런 저항 없이도 살 수가 있구나. 그냥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 수가 있구나.
그것이 나에게 큰 행복이다.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