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사가 이런 건가
제주도에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삿짐 트럭이 집 앞에 도착했다.
신랑은 아잠깐 집에 들렀다 나간다고 했다. 신랑도 나도 이사는 처음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이삿짐이 들어오자 집이 난리가 났다. 무지막지하게 밀려들어오는 짐들 사이에서 동동이와 나는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냉장고를 나르고 침대를 조립하고 책들이 들어있는 박스도 날랐다. 한참 이삿짐이 들어오는데 신랑이 가봐야 한다면서 집을 나섰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지만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이쪽으로 놔주세요~" 그렇게 후다닥 이삿짐이 들어오고, 여기저기 대충 짐이 풀렸다.
"쓸 사람이 다시 정리해야 할 거예요."
주방 정리를 해주신 아주머니가 여기저기에 무엇을 두었다 설명하는데도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수선한 집엔 나와 동동이 둘만 남았다.
첫날은 짐을 정리할 새도 없이 동동이 수료식을 위해 인천에 올라갔다. 둘째 날은 우리가 집에 돌아왔고 신랑은 1박 2일 출근을 했다.
이삿짐 정리는 처음이라 넋이 나갈 것 같았다. 집 정리를 할 때는 영역을 나눠 물건을 꺼내놓고 퀘스트를 깨 나가는 것처럼 정리했는데, 이번에는 모든 물건이 다 꺼내져져 있었고 심지어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인천에서 제주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긴장한 탓에 쉬고 싶은데, 쉬려면 먼저 방정리부터 해야 했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동동이 방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장난감 정리, 책 정리, 비닐봉지에 잔뜩 담긴 옷 정리. 방 하나만 정리를 마쳤을 뿐인데 꽤나 뿌듯했다. 그다음은 화장실 정리. 선반에 마구 올려진 물건만 정리해도 좀 나아 보인다.
그렇게 방 하나를 치우고 뿌듯한 마음에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아직도 정리해야 할 것이 거실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래, 이번엔 옷을 정리해 보자.
동동이는 정리하는 와중에도 놀아달라고 보채고, 정리는 끝나질 않는다. 지난밤에 사 온 냉동 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아침을 대충 때우니 점심 때까 되자 굶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동아, 밖에 나가보자."
그렇게 우리가 걸어서 찾아간 곳은 집 앞 식당. 자비로운 사장님,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 배를 채우소서.
밥 먹고 돌아와서는 정리, 냉동피자를 데워먹고는 다시 정리. 정리하다 잠드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 하소연을 해댔다.
"도대체 이사정리는 언제 끝나는 건가요?"
누군가는 6개월이 걸린다고 했고, 누군가는 2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러니 천천히 힘 빼고 하라고. 그 말인즉슨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소리겠지. 그날은 동동이와 치킨을 시켜 먹으며 정리를 했고, 드디어 신랑이 돌아왔다.
내가 큼지막한 물건들을 잘 정리한다면 신랑은 자잘한 물건들을 잘 치운다. 바닥에 널브러져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물건들이 싹 정리가 되자 사람 사는 집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책상을 치우고 나니 컴퓨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부엌을 치우고 나니 계란 프라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사 온 집에서 처음 밥을 할 때는 내 마음도 두근거렸다. 이곳이 정말 우리 집이 되는 건가?
가장 까다로웠던 것은 가전제품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수 대신 정수기가,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이 설치됐다. 고비였던 세탁기마저 들어오니 정말 우리 집이 되고 말았다.
6개월과 2년이라는 소리가 무색하게, 2주 만에 모든 집 정리가 끝났다.
정리가 된 제주 집은, 인천 집과 묘하게 닮았다. 인천에 있던 그 집을 그대로 옮겨온 느낌이 난다. 방이 2개로 줄었지만 작았던 방이 넓어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전에는 활용하지 못했던 거실이 서재가 된 것도 마음에 든다.
이제는 거실에서 새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쓴다. 물론 제주의 날씨가 맑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온 이상 여기에 맞는 사람이 되어 하나씩 맞추어 나가보려고 한다. 독특하고 고유한 날씨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