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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양관식이던 그 시절

세 식구였던 가족사진

엄마,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고민했었어. 어떻게 적어야 할까. 엄마에게 물어보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기로 했어.


내가 초등학교 때, 그때는 참 힘들었어. 세상이 매일 무너지고 매일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으면서도 또다시 내일이 시작되는 게 끔찍했어. 중학교 때 나는 가출할 용기도 없었고 고등학교 땐 매일 같이 학교에 가서 살았어.


그런데 모든 게 시작되기 전 이런 가족사진이 있네.



두 명의 남동생이 생기기 전. 우리가 세 식구가 되어서 찍은 가족사진.


저기 엄마 아빠 사이에서 까맣고 작은 신발을 신은 아이가 바로 나구나. 엄마도 아빠도 참 앳되어 보이는 사진이야.


저 바다가 어디쯤일까?




엄마가 아빠와 누가 시켜서 결혼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는 좀 놀랐어. 내 기억 속에는 좋았던 시절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런데 엄마 아빠는 말하더라. 두근거렸던 연애시절이 있었다고.


엄마 아빠는 4H라는 청년 농업인 모임에서 만났다고 했어. 아직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한국 4H중앙본부가 나와. 그 모임에서 서로를 몰랐던 두 사람이 만났다고 말이야.


사귀지도 않는데, 모두가 둘을 이어보려고 했다고. 몰아가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결국 만나보게 되었다는 청춘 드라마 같은 이야기.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그런 말을 했어.


"아빠와 만나겠다고 약속을 잡아놓고 고민하다가, 친구와 한참을 놀고 약속시간 보다 훨씬 늦게 약속 장소에 갔거든.

그런데 아빠가 몇 시간 동안 엄마를 기다리고 있더라?"




다행이야. 다행.


그래도 아빠가 양관식이던 시절이 있어서. 아빠와의 추억을 딸에게 이야기해 줄 수도 있어서.


그래, 그런 시절이 있으니까. 엄마가 아직도 아빠랑 같이 살고 있는 거겠지. 이제 와서 지나간 과거를 지울 수도 바꿀 수도 없지만 모두 흘러갔잖아.


그 시절을 버티고 이겨낸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하나씩 이해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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