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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 앞에 서서 죽음을 마주하다.

죽었다 살아나기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해서 혼자 목욕탕엘 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누이면 좀 나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뜨거운 탕 속에서는 어지럽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 냉탕이 보였다.




한 번도 냉탕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차가운 물속에 왜 들어가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몸을 일으켜 냉탕으로 향했다. 계단까지 발을 담갔다. 깨질 듯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냉탕에 겨우 발을 담그고,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냉탕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 물에 뛰어들어 모든 게 끝난다면 어떨까. 이 물이 끝도 없는 바다라면, 난 뛰어들 수 있을까. 차가운 물에 뛰어드는 것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두렵기만 했다.


죽음이 여기에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놔야 할 것이다. 습하고 따뜻한 목욕탕에서 눈물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뚝뚝 떨어졌다.




냉탕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점점 어려졌다. 결혼하고 엄마가 된 나, 결혼 전의 나의 모습, 대학생이던 나, 교복을 입었던 나, 모든 것들. 내가 살아온 모든 것들을 버리고 뛰어들 수 있을까.


물결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천장에 맺힌 수증기에서 물방울이 하나씩 똑똑 떨어졌다.


마침내 나는 작은 아이가 되었다. 사진에서 봤던 그 아이. 그 아이가 안타까워서 자꾸 눈물이 났다. 그리고 더, 더 작아진 나는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세포 하나가 되었다.


그 순간 뛰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수영금지' 표시가 붙은 냉탕에서 물속으로 첨벙 다이빙을 했다.


물은 차가웠고 시원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할머니 몇 명이 이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어떻게 죽느냐는 사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글쎄, 나는 냉탕에 뛰어들어 죽으려 했다. 진지하게. 그리고 죽음에서 살아 걸어 나왔다.


죽음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 죽음이 거기 있다면 당당히 맞설 것이다. 죽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정면으로 부딪혀 깨져서 작은 세포, 흙 하나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죽었다 깨어난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어제 나는 죽었다.

이제 나는 무엇이든 무섭지 않다.



죽음과 물방울에 대한 불교적 비유

https://www.instagram.com/reel/DLSSXF6BELO/?igsh=NTMxdWxoZThwcmI3




*사진: UnsplashArtem Milito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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