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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서 안무의 시작은

연습 4주 차 뚱땅거리며 춤추기

연습 4주 차. 9월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안무선생님이 제주로 내려오시고 기대하던 안무 첫날. 여벌옷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어떨까 생각했는데 아침부터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러닝으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아, 몸을 풀고 왔어야 했는데 일어나 보니 8시 30분이었다. 뛰고 또 뛰고 그다음은 발레의 기본 동작들을 배웠다.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멘붕의 연속.. 본격적으로 안무가 시작되었는데 세상에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골반도 어깨도 목도 삐걱거리기만 하고 박자를 제대로 타질 못한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다 보니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땀은 비 오듯이 흐른다. 그 와중에 생리는 시작 첫날이고 하늘이 빙빙 돈다. 아, 다음 순서가 뭐였지. 기억나지 않는 안무 순서.




만약 오디션에서 빠른 템포의 안무를 시험 봤다면 나는 완전히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디션에서는 굉장히 느린 템포의 한국무용 같은 춤을 췄다는 것이다.


유산소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땀이 이렇게 금방 흐르는구나 오랜만에 느꼈다. 10분 쉬고 다시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갈 때는 다리가 흐물흐물해졌다.


다음날은 마음을 굳게 먹고 몸을 풀고 갔건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온몸에 근육통이 더해져서 살짝 움직이는 것도 아팠다. 박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몸치인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쫓아갈 수 있었는데 안무는 체력적이고 신체적인 부분이다 보니 따라가기 어려웠다. 다른 배우들은 척하면 척. 안무들 배우는 것도 순서를 외우는 것도 정말 빨랐다.


그래도 어떻게 해. 이미 무대에 오르기로 계약까지 끝마친 마당에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살면서 구멍 역할을 맡아보지 않았는데 안무에서는 큰 구멍이 바로 나다. 그렇다 보니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다. 연습을 쉬는 이틀 동안 어떻게든 구멍을 탈출해 보려고 노력했다.


춤은 참... 어려운 존재였다.




스무 살 때까지 몸을 전혀 쓰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만 살았다. 갓 대학생이 된 나는 OT에서 춤을 추겠다고 용을 썼지만 글쎄. 또 무용분과에 들어가서 춤을 췄지만. 전혀 태가 나지 않았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선배들과 달리 삐걱거렸다.


가장 큰 차이는 몸이 많이 굳어 있다는 것. 체력은 엄청나게 딸린다는 것. 그래서 하루는 교대 체육시간에 친구한테 물었다.


"나는 왜 목이 안 돌아가지?"


친구는 너무나 매끄럽게 돌아가는 목이 우두둑 두두둑 돌아가질 않았다. 배드민턴을 칠 때도 다들 한참 치고 있으면 나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아니 근데 체육과에 왜 들어간 거야. 정말.




10년을 요가를 해서 지금의 나름 반듯한 몸을 갖게 되었는데, 보이는 모습은 굉장히 반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직도 여기저기 짧아진 근육들이 많다.


왼쪽 겨드랑이, 골반, 종아리와 발등까지 근육이 타이트하다. 미리 몸을 풀어놔야 남들과 같은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 몸을 풀지 않고 그냥 가면 나는 뚱땅거리는 관절 인형이 되고 만다. 녹화해서 찍은 영상을 보면 얼마나 웃기는지 모른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겠지.




쉬는 이틀 동안 요가 동아리실에서 안무 연습을 해 봤다. 녹화 동영상을 보니 이제야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게 한다.

아, 이렇게 재미있게 하는 거구나!


다들 전공하고 대학생 때부터 갈고닦은 실력들일테니 내가 쫓아가려면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 그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하신다.)




서울 갔다가 제주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브로드웨이 42번가' 뮤지컬을 봤다. 거기에서도 안무 선생님은 막강한 파워를 가진 캐릭터로 나온다.


뮤지컬에서 안무는 엄청난, 정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작품 전체에서 사실 음악, 연기, 춤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8월에는 워밍업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부터 뭔가 실전에 들어간 것 같다.


안무가 들어가니 동선이 정해지고 춤을 추면서 불러야 하는 노래 파트도 명확해졌다.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잘 먹고 잘 연습하고 잘 쉬어야 한다. 10월까지 체력도 기르고 살도 빼고 춤도 춰보자!




* 사진: UnsplashKyle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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