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연습 8주 차
눈을 떠보니 10월이다. 지난 한 달간 시간이 후루룩 지나갔던 이유는 연습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팠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걸리고 회복한 다음 바로 독감에 또 걸리고 말았다.
코로나나 독감이나 증상은 비슷했다. 열이 오르고 해열제를 먹고 식은땀이 났다. 그동안 이틀씩 두 번 연습에 결석을 했다. 집에서 푹 쉬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뮤지컬 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데, 체력이 너무 달리는 걸 느꼈다. 그래서 병을 얻었고 아픈 뒤에는 면역이 떨어져 다른 병을 얻었다. 이제는 아프지 않은 것이 목표가 되고 말았다.
제발 공연 끝날 때까지 더는 아프지 말자.
하루에 10시간씩 잠을 잤다. 잠을 자면 피곤한 것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짜증만 나는 것도 모두 해결이 되니까. 다섯 살짜리 아들이랑 똑같이 잠을 10시간씩 잤다. 개운하고 좋기도 했지만. 점점 무기력이 찾아왔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너무 힘들고, 10시간씩 자야 하는 내가, 이 정도를 못 버티는 내가 한심하기도 또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했다.
문제는 글 쓸 시간도 없어지다 보니 무력함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못 올린 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글 쓸 시간에 푹푹 쉬다 보니 다시금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나에게 글은, 꼭 써야 하는 것.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이다.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결국 탈이 나고 만다.
오늘은 새벽에 더워서 잠이 깼다가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제는 쉬는 날이었고 아침부터 요가도 했고, 잠도 충분히 잔 것 같으니 이제 일어나서 글을 써볼까.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는 게 어쩌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해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글을 쓴다. 더 자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연습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하지만 내 뜻대로 살아갈 시간이 나는 여전히 필요하다.
이 새벽에 혼자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이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 그게 나를 나답게 만든다.
무기력과 힘없음과 해낼 수 있을까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이걸 느껴보라고 뮤지컬 배우 오디션에 붙은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하고 춤추는 일은 강철 체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이번 작품을 올리고 나면 나는 아마도 예전보다 체력과 춤 실력과 노래실력이 조금은 좋아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을 못하겠다.
싫어해서가 아니라, 좋아하지만 내가 그 정도의 체력을 계속해서 감당해 낼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걱정이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면서 집중을 하려 하고 있다.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누리기 어려운 삶이니까. 오늘도 몸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배우에 가까워지겠지.
35살이 되어 진짜 뮤지컬 배우가 되고 나서야, 나는 왜 뮤지컬 배우가 하고 싶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 사진: Unsplash의MARIOLA GROBELS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