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2주 앞으로 다가오다
오늘 아침에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를 생각해 보았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나는 아주 평범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였다. 매일 아침 학교에 지각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은 선생님을 그만두었다. 사실 1년의 자율연수 휴직을 쓸 수도 있었지만 휴직을 하지 않고 의원면직을 했다.
육아휴직 하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이 쉬기만 하면서도 공무원 연금은 꼬박꼬박 부어야 했다. 선생님을 그만 둘 거면서 휴직으로 연장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 결정이 지금의 나를 뮤지컬 배우로 만들었다.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하고 합격한 후 계약서를 썼다. 이 일을 처음 하는 사람이지만 이 일을 하고 돈을 받는다. 세상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휴직을 하는 중이라면 당연히 이런 일에는 도전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무원은 겸직이 불가능하니 말이다. 겸직 신청을 허가받는 일은 굉장히 까다롭고 잘 되지도 않는다.
뮤지컬 배우가 되기 전에는 스스로 요가 수업을 만들어서 나를 '요가 선생님'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냥 내가 만든 직업이었다.
함께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님 중에는 연기 경력 30년 이상의 선생님도 계시다. 선생님은 가끔 나를 불러다가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며 조언을 해 주신다.
나는 교사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것을 제외해면 어디가서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 대학 입시를 준비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그냥 맨 땅에 해딩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맨 땅에 해딩.
땅에 머리를 박으면 머리가 아프지만, 그렇게 해서도 배울 수가 있다. 그분은 내가 얻은 기회가 아주 희귀한 경우라고 말 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물으셨다.
"그래서, 앞으로 연기를 더 해 볼 생각이 있어요?"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9월에는 체력적으로 무너졌지만 그마저 몸이 적응해 주었다. 지금의 나는 하루 하루 연습에 참여하는데 모든 것을 쏟고 있다.
글쎄, 배우를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등학생의 나라면 그렇다고 말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쉽게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험난한 길인지도 알겠고, 또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운 좋게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다음 작품을 언제나 하게 될지, 또 통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이 일이 좋다. 하루 하루 꿈으로 출근하는 것이. 제주아트센터 연습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걷는 것이 좋다. 지금의 삶을 작년 이 맘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목표를 정하고 달리는 것보다는 삶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나에게 저절로 다가오는 기회를 잡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뮤지컬 작품에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제 공연이 2주 남았다.
어제는 커튼 콜을 연습했다. 공연은 끝내 잘 올라갈 것이다.
인생은 흐르고 있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어도 괜찮다. 잘 못된 길은 없으니까. 이 순간을 글로 남길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이다.
그럼 이제 다시 연습하러 출근을 해 볼까.
* 예매 : 제주 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