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3주 차 몸풀기의 비밀
연습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몸풀기'이다.
작품에 참여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다른 작품에서 몸풀기를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연출님의 몸풀기를 이야기해 보겠다.
연출님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바로 배우가 되어 작품으로 들어오는 것은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것은 '정화'의 과정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생각과 해야 할 일을 내려놓고 오롯이 배우로 서는 것이다.
몸풀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불을 끈다.
연습실이 지하 2층이어서 불을 끄면 굉장히 깜깜하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서 조용한 음악에 맞추어 호흡을 한다.
그 라운딩. 땅을 두 발로 디디고 서서 호흡을 하는 명상과 정확히 같다.
연출님은 호흡을 머리카락까지도 보낼 수 있다고 하셨다.
요가와 명상을 하는 동안 호흡이 단순히 들이마시고 내 쉬는 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호흡이 심지어는 세포 하나하나 머리카락까지 갈 수 있다는 것.
호흡으로 몸을 이완시키고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것이 몸풀기의 첫 번째이다.
그렇게 호흡을 하고 나면 이완된 몸과 마음 상태가 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천천히 걷는다. 느린 음악에 맞추어 천천히 발을 뗀다.
이때도 호흡에 따라 걷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냥 발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호흡에 따라 걸음을 옮기는 것. 발 뒤꿈치부터 천천히 무게중심을 느껴보는 것. 이것 또한 걷기 명상과 같다.
집에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연습에 오면 이렇게 명상을 하게 되니 너무 마음이 편하고 좋다.
어둠 속에서 걸으면서 가끔은 다른 배우들의 에너지를 느껴보기도 한다.
연기를 하다 보면 내가 가진 에너지와 다른 사람이 가진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좁은 원 안에서 서로 닿지 않게 걷다 보면 사람마다 가진 에너지의 특성과 색깔이 모두 다르다는 걸 알게된다.
걸으면서 소리를 내 보기도 한다.
마치 한 사람이 내는 것처럼 끊기지 않게 소리를 내 본다. 내 목소리가 끊기면 다른 사람이 그 공간을 메워서 소리가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소리를 내다보면 내가 어딘가 커다란 우주에 와 있는 느낌도 든다.
또 숨을 들이쉬고 참은 뒤 서서히 내뱉는 연습도 한다.
숨을 참는 동안 자세가 바르게 정렬이 되고 또 배에 힘이 들어간다.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바른 정렬이 필요하다. 다른 무언가가 아닌 호흡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몸을 풀고 나면 나는 땅과 하늘 사이에 바르게 선 한 사람이 된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정수리에서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느낌이 든다.
땅과 하늘 사이에 연결된 사람이 된 것이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일은 이렇게나 성스럽고 영적인 일이기도 하다.
몸풀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마음도 가라앉고 하루를 시작할 힘이 생긴다. 얼마나 많은 내공을 쌓아오셨으면 이런 것들을 알고 계실까. 궁금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학생처럼 배낭 메고 뮤지컬 연습을 다니면서 그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로부터 수업을 들으니 기쁠 따름이다. 연출님도 음악감독님도 안무쌤도 다들 너무 멋지다... 어디에 가도 들을 수 없는 수업을 뮤지컬 작품을 준비하며 듣는다.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 예술대학을 다니는 학생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참 좋다.
*사진: Unsplash의Anton Darius, 사진: Unsplash의Joel Mo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