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뮤지컬 연습 1주 차의 시작
우여곡절 끝에 오티 장소에 도착했다. 아는 사람은 오디션을 볼 때 같이 햄버거를 먹었던 배우님 딱 한 사람. 밝은 에너지의 배우님 덕분에 겨우 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낯선 얼굴들. 기분은 좋았지만 나는 인사를 나눌 마음의 여유도 없이 얼어 있었다.
오티에서는 가장 먼저 작가 선생님의 작품 설명이 있었다. 작가 선생님은 순식간에 우리를 1980년대 해녀들의 세계로 데려다주셨다.
산방산 앞으로 보이는 1950년대 해녀 사진. 집 앞 사계 해변인데, 같은 장소의 몇 십 년 전을 보고 있자니 느낌이 새로웠다.
첫날은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배우가 아닌 것만 같았고, 나 빼고 다른 모두는 배우라고 느꼈기 때문에 뭔가 어렵기만 했다.
밥을 먹고 연습실로 들어와 첫 리딩. '이게 바로 대본 리딩이라는 건가.' 앙상블이라서 읽을 부분도 별로 없었지만 첫 대본 리딩은 떨리기만 했다.
연습 첫 주는 연습을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고, 이렇게 연습을 하고 심지어는 페이를 받는 것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연습을 참여하는 뮤지컬은 창작뮤지컬이어서 우리가 '초연 배우'가 된다. 그러니 노래도 따끈따끈하게 만들어져 나오고 있고 대본도 여전히 수정 중이다. 어떤 작품에 초연으로 들어간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두 번째 날에는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한번 배운 노래는 다음날까지 외워오기. 첫 합창인데 다른 배우님들은 악보를 다 읽어와서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뮤지컬 동아리에 있을 때는 한음 한음 집어주고 천천히 진도를 나갔는데, 지금은 그냥 고고! 악보를 읽는 음악적 감각도 다들 굉장히 좋고, 화음도 굉장하다. 동아리에 있을 때는 못 쫓아가는 편은 아니었는데 프로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쫓아가기 바쁘다.
그렇게 하루에 두곡 합창을 배운 뒤, 다음날은 바로 동선을 시작했다. 3일 만에 동선이 나가니 다른 배우들도 진도가 정말 빠르다고 했다. 그렇게 3일 연습을 하고서 작품에 쑥 빠져버렸다.
단시간에 이렇게 작품에 깊이 집중해 본 적은 처음이다. 심지어 글을 쓸 때도 3일 만에 작품에 집중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집중을 못 한 적이 훨씬 많았다.
배우들이 집중하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작가는 혼자서 그 세상을 믿어야 한다면 배우는 여러 명이 함께 작품 속 세상을 믿으니 굉장히 든든하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연습하는 시간만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1주 차 마지막날이 되니 긴장했던 것이 풀어져서 졸음이 절로 쏟아졌다. 기절하듯이 쓰러지고 쉬는 날 이틀도 겨우 정신줄을 잡고 버텼다. 아무래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쓰다 보니 첫 주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1주 차의 가장 행복했던 점은 현실에서 걸어서 꿈으로 출근을 했던 것이다. 내비게이션의 '회사'는 항상 학교였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에 '제주아트센터'를 입력해 놓았다. 앞으로 3개월은 제주 아트센터로 출근을 하게 된다!
아침에 운전대를 잡을 때면 내가 향하는 그곳이 나의 꿈 속이여서 너무 벅차오른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걱정이 지만 꿈을 현실로 만드는 건 언제나 떨리고 행복한 일이다.
꿈이 현실이 되어서 나타났을 때,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겨 보자. 얼어붙지 말고 천천히 꿈속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꿈속에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행복하다.
*사진: Unsplash의Sasha Free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