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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하다.

내가 정년이라는 마음으로


드라마 정년이에서 첫 장면은 뻘밭에서 꼬막을 캐고 있는 정년이의 모습이다. 갯벌에서 꼬막을 캐면서 노래를 하는데 노래를 하지 말라고 한다. 어머니가 알면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정년이는 시장 바닥에서도 노래를 한다. 그렇게 생선 냄새 폴폴 풍기며 살아가고 있을 때 국극단이 공연을 하러 온다.


정년이는 우연히 국극단원으로부터 초대를 받게 되고 직접 공연을 본 후 그 세계에 푹 빠져버린다. 국극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나라의 첫 판소리 뮤지컬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정년이를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시작하는 몇 화를 이어 보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정년이의 엄마는 정년이를 노래 부르지 못하게 하려고 광에다가 가두고 밥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년이는 도망가서 오디션을 보러 가는 것이다.


글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할 열정이 있나?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생각하면서 드라마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지인에게 문자가 왔다. 바로 뮤지컬 오디션을 보라는 것.


나는 거절부터 하고 봤다.


"아니, 이 걸 어떻게 봐요. 그럼 같이 보던가 해요."

"아니, 붙어도 어떻게 연습을 해요. 연습이 얼마나 힘들 텐데."

"아니, 연습하면 우리 애는 누가 봐줘요."


그렇게 여러 가지 핑계가 있었지만, 결국 나에게 온 어떤 흐름을 걷어차버리지 않고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 말 그대로 서류 전형에서 붙을지 떨어질지 모르니까 일단 최선을 다해 동영상을 준비해 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20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루 종일 준비를 했다는 뜻이 아니고 동동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는 몇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있는 경력 없는 경력 몽땅 모아서 보낸 서류 전형에 덜컥 통과를 하고 말았다. (경력이라고는 교사 뮤지컬 동아리에서 활동을 한 게 전부이다. 사실 그런 경력은 경력으로 쳐 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2차 오디션은 대면 오디션으로 제주 아트센터에서 이루어졌다.


1차 발표가 나고 2차 오디션은 준비하는 기간은 3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 있었다. 오디션을 보러 가는 그 자체가 굉장히 기쁜 일이었기 때문에 또 하루에 고작 몇 시간이었지만 또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다.


오디션을 보러 간 날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 '배우들과 함께 오디션을 본다는 거야' 하는 생각 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즐기고 오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실제로 오디션을 보니 너무 떨려서 머리가 새하얘지고 말았다.


대사도 동선도 노래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지만 그저 마음만은 기쁜 오디션이었다.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왔는데 '예비합격' 문자를 받았다. 대학 입학시험도 아니고 예비합격이 뭘까 생각했다. '탈락'을 다른 말로 '예비합격'이라고 한 건 아닐까. 연락을 준다던 6월 말까지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겨우 7월 1일 날 합격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연습 일정을 알고 싶었으나 누구 하나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7월 중순이 넘어가고 문자가 왔다. 연습일정이 토, 일, 월, 화라는 것.


신랑이 출동을 나가면 토요일, 일요일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매니저님에게 전화를 걸어 토요일 일요일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고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았지만 연습 일정은 정해진 거라 바꿀 수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말씀 좀 잘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때부터 동동이를 어떻게 맡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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