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에서 처음 집에 온 날

코로나에서 버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들


좋으나 싫으나 조리원은 산모와 아기에게 안전한 공간이었다. 아침이면 소아과 의사가 아기들을 진찰했고 최소한의 동선으로 아기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바깥으로 나가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퇴소일이 가까워질수록 막막했다.


퇴소하는 날 짐을 빼서 차에 싣고 아기를 겉싸개에 돌돌 싸서 소아과로 내려갔다. 소아과에 있는 아기 중 조리원에서 방금 내려온 내 아기가 가장 어렸다. 그 작은 몸에 몇 방의 주사를 맞히면서 인생은 도전과 고난의 연속이구나 싶었다.


집에 오늘 길, 차는 왜 이렇게 많은지. 신랑은 결혼식 당일에 직접 운전을 했던 이후로 이렇게 떨리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주차장에 간신히 도착해서 조심스레 카시트를 빼냈다.


아기는 눈꺼풀을 깜빡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현관문을 열었다. 세 가족이 집에 도착한 첫 순간이었다.




2주 동안은 친정엄마가 집에 와계셨다. 나는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언제든 씻을 수 있었고 엄마는 아기를 마음껏 안아볼 수 있었다. 나중에 혼자 있게 된 뒤 씻는 건 사치가 되었기 때문에 씻을 수 있다는 건 아주 소중했다.


따스한 햇볕이 거실을 비추는 어떤 시간에는 엄마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제 할머니가 된 엄마와 아기를 사진으로 담았다.


새벽에는 나와 신랑이 아기를 돌봤다. 우리집 작은 방에서 나의 친 남동생이 살고 있어서 따로 아기방이 없었다. 그래서 밤이면 아기를 어디에서 재울까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침대를 조용히 밀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안방에서 아기와 같이 잤다. 그러면 새벽에수유하기가 불편했다. 모유 수유를 하려면 적당한 높이의 소파와 수유쿠션이 있어야 했다. 침대에 앉아서 수유를 시도해 보니 등받이가 없어서 불편했고 식탁 의자는 너무 높아서 발 받침대가 필요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유 장소는 거실 소파였다.




신랑이 본격적으로 출근을 하게 되자 아기를 수유하기 편한 거실에서 재웠다. 나는 아기를 재운 뒤 문을 반쯤 열어놓고 안방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가 아기가 깨면 다시 거실에 나가서 아기를 돌봤다. 아기가 낑낑거리기만 해도 눈이 떠졌다.


아기가 거실에서 자다보니 신랑이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올 때면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자궁 소리가 나는 백색 소음을 틀어놓기는 했지만 걸어갈 때 마룻바닥에서 나는 소리마저 신경이 쓰였다. 신랑은 조용히 씻고 옷만 갈아입은 채로 매트리스를 깔아놓은 옷방에 들어가 혼자 잠이 들었다.


새벽 수유를 마치고 트림을 시키기 위해 아기를 어깨 위에 올리고 집안을 몇 바퀴 걸었다. 그러면 아기는 트림을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기는 무겁지 않았다. 속싸개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모습이 귀여웠다. 새벽에 아기를 안고 걸어 다니며 재웠던 일이 나를 힘들게 하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새벽에 거실 창문을 내다보면 아파트 단지에 켜져 있는 불빛들이 간간이 보였다. 일부로 눈을 비비며 깨어있기에는 야심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 불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기 어딘가에도 나처럼 아기를 돌보는 엄마들이 있겠지.


* 사진: UnsplashЄвгенія Височин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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