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저는 세계일주가 꿈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단 한번 지구에 태어났으면 적어도 지구를 한 바퀴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임고를 두 번 봤고, 임고 대기발령 중인 1년 동안 전세금3000만 원을 가지고 전 세계를 여행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바로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연애를 하면서 저의 계획은 실행못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는 세계 여행보다 지금 이 사람과 누리는 매일매일이 더 소중했거든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행에 대한 열망이 옅어지면서 연애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글쎄요. 가끔 그때 떠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미련이 남지는 않아요. 앞으로의 날들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직 제 인생은 창창하니까요.
떠난다고 해서 뭘 찾을 수 있는 건 아닌데 왜 자꾸 떠나고 싶은 걸까요?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건그동안 잊고 있었던 진짜 '나'를 만나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평소에는 진짜 나를 꼭꼭 숨겨놓고 잘 꺼내지 않아요.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저 속에 밑바닥에 내려가 있죠. 하지만 여행지에 가면 숨겨놨던 내가 표면 위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마음껏 숨을 들이쉬죠.
"야, 나 진짜 숨참다가 죽을 뻔했어. 좀 빨리 꺼내주지 그랬어?"
코로나 때문에 여행은 물론이고 외출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데 저는 아기와 단 둘이 집에 남겨졌어요.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서 고립되다 보니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있을 곳이 정말 집 주변 밖에 없었을 때, 저는 떠났던 여행들을 떠올렸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첫' 해외여행이더라고요. 특히 친구와 20박 21일을 떠난 유럽 여행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아이와 둘이 하루종일 부대끼는 동안 머릿속에서 툭툭 떠올랐어요. 그때의 느낌이나 공기가 얼마나 생생하게 생각났는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외출은 유모차를 밀고 밖에 나가 산책하는 것뿐이었죠.그때 떠오른 말이 이거였어요.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은 여행처럼"
한 번쯤 다들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여행을 못 가니까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왜 사람들이 자꾸 여행을 떠나는 걸까 생각했죠.
그 첫 번째는 자유로움입니다. 자유로움을 찾아 여행을 떠나죠. 어떤 행동을 해도 여행지에서 만큼은 괜찮습니다.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죠. 그동안 진정한 나를 숨기고 지냈다면 여행지에서는 진짜 내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허용입니다. 여행지에서는 계획을 철저하게 짜도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해요. 여행지에서는 가려던 방향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흘러가더라도 그마저 여행의 기쁨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허용하는 거지요.
세 번째는 새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먹지 못했던 것을 먹어보고,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식재료들 음식들 소스들을 마음껏 먹어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번지점프에 스카이다이빙도 해 볼 수 있어요.
바로 지금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번 해볼까 하는 용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새로운 여행지의 풍경 속에 들어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껴요.
이 세 가지를 일상으로 가져오면 일상도 여행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일상을 즐겨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먼 곳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은 시간이 더 걸릴 거니까요. 하하.
누가 보든지 말든지 자유롭게 거리를 걸어보고,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다가오는 모든 것을 허용해 보고, 또 가지 않았던 가게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길로 가보곤 합니다. 특히 제일 좋아하는 건, 새로 생긴 음식점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일이에요. 마치 여행온 사람처럼 말이죠!
그렇게 바람과 하늘을 느끼며 걷다 보면 어느새 행복해집니다. 떠나지 않아도 참 행복하다. 말할 수 있어요. 오늘의 일상이 당신에게 여행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